개천에서 용나지 않는 시대에 고함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정대진 (책마루,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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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초안이며 보다 자세한 내용은 위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글 싣는 순서>

막힌 물길

중학교 3학년, 이재민의 경우/ 꿈은 꿈일 뿐이다 / 함께 꾸는 꿈도 현실이 되지 않는다 / 계속 꿈만 꾸어야 하는가 / 다른 꿈을 꿀 수는 없을까 / 다른 꿈도 못 꿀 수 있다 / 볕도 안 드는 뿌연 개천에서 살아가기 / 통계로 보는 볕 안 드는 개천 바닥 / 오늘날의 개천은 강과 바다로 닿지 않는다 / 강과 바다에 사는 아이들은 행복할까

개천에서도 용은 났으나

개천에서도 용은 났으나 / 다이너마이트에 불장난하는 대한민국? / 억울하면 출세해라, 왕조의 몰락과 식민지배/ 억울하면 출세해라, 정부수립과 고착된 기회주의 / 억울하면 출세해라, 뿌리 깊은 기득권과 막힌 공로(公路)/ 개천에서 용 되려면 무조건 “중앙으로!” / 대학입시는 계급투쟁 / 가족 이기주의 / 늘어나는 사회비용 / 인삼이나 산삼보다 귀한 고3 / 무한발전 사교육 / 병목현상 / 패자부활전도 없다 / 왜 이렇게까지 / 개천에서 난 용 한 두 마리로는 안 된다

물길을 트자

한 곳으로만 흐르는 물길, 막힐 수밖에 없다 / 한 곳으로 갈 거면 물길이라도 다양하게 / 개인의 의지보다는 시스템으로 / 시스템의 가능성 하나, 국가 엘리트 육성 프로그램 / 가능성이 여는 세상①- 개천에서 난 용,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만들다 / 시스템의 가능성 둘, 교육발전종합계획 / 가능성이 여는 세상 ② - 두렵지 않은 ‘제2의 인생’, 인생을 두 배로 사는 세상 / 새로운 사회를 위한 가능성, 만16세 투표권 / 가능성이 여는 세상 ③ - ‘엘리트 농사꾼’, 김의원



패자부활전도 없다

중앙권력이 모든 걸 지배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여기에 진입하기 위해 극심한 ‘병목현상’이 일어난다. 이를 뚫기 위해 ‘계급투쟁’과도 같은 대학입시에서 승리하는 게 첫 번째이다. 재수, 삼수도 마다하지 않는 게 한국인들의 행동방식이었다. 그나마 요즘에는 ‘받쳐줄 수 있는 집안’ 아이들이나 재수, 삼수도 마음 놓고 할 수 있다. 우선 대학에 들어가 이른바 ‘반수’를 한다고 해도 등록금 천만 원 시대에 등록금은 등록금대로, 재수비용은 재수비용대로 지출하는 일은 웬만한 가계에서는 감당키 힘들다. 온전히 재수, 삼수만 한다고 해도 의대나 교대에 갈만한 될성부른 떡잎이 아닌 이상 집에서도 계속 돈대주기에는 본전 생각이 안 날 수 없다.

그러다보니 ‘패자부활전’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어차피 중앙권력에 진입하여 그럴싸한 인생을 살 가능성이 없는 인생은 주변부로 밀려나 표류할 수밖에 없다. 원래 ‘패자부활전’은 ‘승자’와 ‘패자’의 구분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승자독식주의 사회이다 보니 패자들에게 떡고물이라도 나누어 주기 위한 관용이 허락되지 않는다.

건강한 사회는 사실 승자와 패자의 구분이 모호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이 저마다의 가치와 목표에 따라 다양한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삶의 모습이 다원주의에 입각하여 인정받아야 한다. 누가 인생의 승자이고, 패자이다, 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 힘든 사회가 진정한 사람 살 만한 세상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대학입시에 실패한 10대 청소년은 일단 ‘패자’로 분류된다. 이를 당연한 상식으로 여긴다. 그리고 이 ‘패자’들은 달리 갈 곳도 없다. 내가 1996년 겨울에 대학교 네 군데를 떨어져봐서 안다. 앞이 캄캄했다. 재수 결심을 하는데 한 달 가까이 걸렸다. 재수를 하는 거 외에는 다른 출구가 없었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대학공부가 크게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을 안했다. 그렇지만 갈 길이 없었다. 일단 대학에 가서 생각해보라고 주위에서도 조언했다. 그 후에 글을 짓던, 밥을 짓던 하라는 것이었다.

재수를 하기 위해 서울에서 잘 가르친다는 재수 종합반 입학시험도 봤다. 그런데 거기서도 떨어졌다. 수학을 잘 못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될 놈은 되고 안 될 놈은 안 될 막힌 구조였다. 한번 패자가 되면 줄줄이 다음 코스에서도 패자의 길을 걷게 되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패자’를 한 해 수십만 명씩 양산하는 게 우리 사회이다. 서울의 명문대를 가는 수만 명 정도를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대부분 열패감에 빠진 채 20대 청춘을 시작한다. 설혹 명문대에 갔다고 그 안에서 상위 1만 명안에 들어보겠다고 반수와 재수를 선택하는 이들도 수두룩하다. 먹을 만한 떡과 열매가 한 곳에 모여 있으니 그 근처에 못가는 사람들은 떡고물, 과일껍질도 구경 못한다. 일단 떡과 열매가 한정되어 있고 그리고 거기에 이르는 길이 좁기 때문에 패자부활전을 폭넓게 열어 누구에게나 제2, 제3의 기회를 주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개천에서 차근차근 올라와 상류의 물줄기로 나아갈 어린 물고기들을 보기 힘든 것도 당연한 일이다.

 

왜 이렇게까지

예전처럼 개천을 거슬러 올라와 하늘로 훌쩍 뛰어오를 인재들을 구경하기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패자부활전이 없기도 하거니와 전반적으로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첫째, 경쟁의 틀이 많이 변했다. 학력고사 시절에도 고액과외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달달 외우고 익히면 가난한 집 아이라도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수능과 논술이라는 종합 사고력 측정 방식으로 대입제도가 바뀌었다. 대학별로 다양한 입시전형이 실시되기 시작했다. 이후 정교한 사교육의 컨설팅과 학부모의 정보력이 뒷받침되지 않고 혼자서는 ‘승자’가 되기 어려워졌다. ‘마이스펙(my spec)’뿐만 아니라 각종 경시대회와 봉사활동 등도 챙겨야하는 ‘마더스펙(mother's spec)’도 필요한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둘째, 사회경제구조가 변했다. 그동안 우리 사회를 지탱해오던 중산층이 점차 붕괴되고 양극화 구조로 사회경제구조가 변했다. 이것이 변화한 ‘경쟁의 틀’과 얽혔다. 있는 집안은 ‘마더스펙’까지 충분히 챙기며 준비하고, 없는 집안은 망연자실 그저 시류에 따라가고 있는 실정이다. 요즘 강남 지역에서는 자녀를 아프리카나 동남아 오지 등으로 국제봉사활동을 보내는 일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서민층의 자녀는 봉사활동 비용을 대지 못해 가고 싶어도 못 간다. 봉사활동의 진정성은 별개의 문제다. 그러나 대입 전형 시 봉사활동 분야에서 국제봉사활동을 한 학생과 평범한 쓰레기 줍기, 독거노인 도시락배달을 한 학생 중 입학사정관이 관심을 기울일만한 학생이 누구인지는 따로 묻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리고 셋째, 제도화되지 않은 질서와 문화가 제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에 가는 것이 곧 법관이나 관료로 입신출세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라도 일정 자격만 갖추면 제도적으로는 고시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단 서울대를 가는 게 고시준비에 유리하고 고시에 합격한 후 인생을 개척해나가는데 인맥이나 정보력에서 월등히 유리하기 때문에 모두 서울대에 목을 맨다. 서울 명문대 출신이어야 집중화된 중앙권력에 진입하기 쉽고 그리고 이 커넥션 안에서 사회적 자원분배가 이루어진다. 이 커넥션 안에서 제도도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세상 흐름을 읽는 한국이라면 누구든 서울 명문대에 직접 진학하거나 혹은 자기 자녀라도 꼭 보내려고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면서도 명문대 출신 엘리트들이 모든 걸 독점하는 꼴은 용납하지 못하는 게 한국인의 정서이다. 그래서 대선에서 엘리트 이미지 후보 대 서민층 이미지 후보가 붙으면 대개 서민층 이미지를 가진 후보가 승리를 거두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해서 개천에서 난 용이 한국 대통령 중에는 꽤 많았다.

 

개천에서 난 용 한 두 마리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미 개천에서 났던 용들도 다음 이무기들을 위해 개천을 강과 바다로 이어주는 물길 공사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해서 문제이다. 개천에서 난 용에 속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이 나라의 최고지도자를 지냈음에도 시간이 갈수록 단극구조의 중앙권력에 대한 집착과 여기에 진입하기 위해 공교육과 사교육 양쪽에 모두 들어가는 이중비용은 날로 커지고 있다. 중앙권력의 변방에 있던 사람들이 대통령이 되고, 제대로 된 사교육의 혜택은 별로 받아보지도 못했을 것 같은 사람들이 최고지도자가 되면 뭔가 바뀌어야 하는데 이건 영 아니다.

이미 기성세대에게서 문제해결의 원천적인 실마리를 기대하는 건 힘들어 보인다. 우리 사회의 최고의사결정 집단을 이루고 있는 5,60대는 자식 세대인 2,30대가 청년실업과 무한경쟁의 가속화 속에서 힘들어 하는 걸 보고 있으면서도 개인의 노력만을 주로 강조하고 있다. 자신들의 젊은 시절의 시대적 조건과 지금 시대의 조건이 달라진 점을 깊이 고려하지 않거나 혹은 모른 체하며 젊은이들을 더욱 가혹한 경쟁으로 내몰고 있다.

이는 흔히 ‘진취적인 도전’ 혹은 ‘치열함’ 등으로 포장되어 젊은이들을 더욱 옭아맨다. 하지만 김영하의 소설 《퀴즈쇼》에서도 묘사되듯이 지금 젊은 세대는 단군 이래로 가장 많은 교육을 받고, 외국어와 컴퓨터, 각종 지식과 자격증 등으로 중무장한 세대이다.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의 부모 세대들은 지금 젊은이들이 잘하는 것 중 한 가지만 하고도 평생을 먹고 살 수 있었다. 지금 젊은이들은 각 개인이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부족해진 일자리와 더욱 좁아진 중앙권력으로의 진입통로가 막혀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미국 MBA를 따가지고 오면 직장을 골라잡아가며 안정된 고소득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대기업 신입사원 구인광고란에 ‘미국 MBA・변호사・공인회계사 우대’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미국 MBA나 변호사,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면 예전에는 멋들어지게 사는 인생이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고급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도 신입사원 선발 시 겨우 ‘우대’해준다는 조건에 따라 작은 희망이라도 가지고 입사지원서를 내야하는 현실이다.

이런 상태에서 20대 젊은이들은 조금이라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할 수밖에 없다. 합리적인 개인이라면 친구들과 어울려 술잔을 기울이며 인생과 사회를 토론하는 시간보다는 혼자서 밥을 먹고 도서관에 앉아 영어나 중국어 공부를 하고 전공관련 서적을 탐독하는 걸 당연히 중시하게 된다. 연대와 협력이라는 것도 실질적으로 취업에 도움이 되는 스터디 모임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이나마 여기서도 서로 도움만 되는 부분만 취하고 모른 척하려는 얌체들 때문에 종종 다툼이 나기도 한다. 예전에는 평생직장 개념이 있었기에 젊은 시절부터 그렇게 재테크에 목매달지 않아도 되었다. 친구간의 의리와 이웃 간의 정으로 표현될 수 있는 연대와 협력이 자리 잡을 수 있는 조건이 있었다. 5,60대 부모세대들의 젊은 시절 이야기이다.

기성세대들은 자신들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요즘 젊은 것들은 낭만도 없고, 지들밖에 몰라”라고 손가락질할 줄 모른다. 하지만 제 자식만큼은 도서관에 앉아 열심히 공부해서 남들 밟고서라도 좋은 기업에 취직하고, 고시패스해서 출세하기를 바란다. 기성세대들 중 IMF 이후 구조조정의 바람에 휩쓸려 비참한 중년신세가 된 이들도 많지만 지금 젊은이들처럼 젊어서부터 치열한 경쟁에 내몰려 신음하지는 않았다.

산업화 시기에 밤낮을 모르고 젊은 시절을 보냈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고생을 해서 경제적 풍요를 이루었으면 그 과실을 자식 세대에게 안정적으로 이전하고 사회가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다지도록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사회 곳곳에서 최고의사결정권자가 된 기성세대들은 젊은 세대를 쥐어짜서 조직을 굴릴 고민을 한다. 새로운 경쟁시대의 악조건을 젊은 세대들에게 전가하려는 움직임도 보통이다. 기업의 임금삭감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와 군살빼기를 하려면 억대연봉을 받는 임원들의 임금을 깎아야지 왜 쥐꼬리 만한 신입사원들의 임금을 깎는가?

우리 사회의 최고의사결정권자들인 5,60대가 이러하다면 사회의 중견세대로 접어든 486세대에게 희망을 걸어보자고 할 수도 있다. 이들은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니며 군사독재정권을 퇴진시킨 세대이다. 그 어느 세대보다도 정치적으로 훈련되었고 조직적인 행동을 해봤던 경험을 공유한 세대이다. 젊은 시절 연대와 협력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고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중추역할을 하며 정치적으로 상당한 역할을 했던 이른바 386세대였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가 사회의 중견간부로 자리 잡은 지금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기러기 아빠의 원조가 바로 이 세대이다. 지금 10대들을 과잉 사교육의 광풍에 내몰고 있는 부모세대가 바로 이 세대이다. 세상의 변화와 발전을 위해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자신들의 20대를 바쳤던 세대이기도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급격하게 변한 세태 속에서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세상에 적응하여 벤처붐을 타기도 하고 신성장 지식산업의 최일선에서 부를 창출하며 사회의 중견세대로 자리잡아간 세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도 대부분 가족 우선주의와 중앙 집중 권력구조의 굴레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대부분 자기 자식인 현재 10대들에게 교육을 통해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와 부를 전수하는데 여념이 없다.

40대 지식인 교수들 중에 미국 대학으로 안식년을 다녀오면서 자기 자식을 데리고 들어오는 교수들은 거의 없다. 대부분 자기 자녀를 조기유학생으로 현지에 남겨두고 온다. 잘나가는 벤처 기업인과 변호사, 의사 등의 전문직 종사자 중 기러기 아빠 생활을 권유받지 않았거나 아예 생각을 안 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미 단극구조의 중앙권력에 안착한 486세대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크게 반하는 정치적 활동을 할 필요성이 없다. 문제점이 있다고 느낄 수는 있지만 이미 중앙권력의 단맛을 향유하고 있는데 굳이 그 꿀단지를 깨버리거나 줄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 중앙권력에 들어오지 못한 486세대들은 자영업이나 샐러리맨 생활을 하며 자신들이 ‘성공’하지 못한 인생으로 늙어감을 한탄하는 시점으로 접어 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자기 자식들의 교육에는 더욱 매달려 자식들을 ‘출세’시켜 중앙권력의 단맛을 느껴보게 하려고 사활을 걸게 된다. 그리고 자신들은 성공한 자식들의 부모가 되어 여생을 보장받는 그림을 그린다. 단극구조의 중앙권력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이렇게 성공과 실패가 명확히 갈리지도 않고 죽기 살기로 몇 가지 좋은 직업군에 모두가 매달리지 않아도 될 텐데 어쨌든 우리 현실은 이와는 정반대다.

구조상 한 두 개인의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우리는 너무 먼 길을 왔다. 이제 개천에서 용이 나기도 힘든 시절이기도 하거니와 개천에서 한 두 마리 용이 나도 구조적으로 중앙권력의 단극 시스템에 빨려 들어가게 되어 있다. 용들도 개천 밑바닥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이무기들을 끌어올려주거나 사다리를 내려줄 여유가 극히 없다. 날아가 버린 용들과 개천 밑바닥에서 퍼덕거리는 이무기들이 서로 갈라진 물길에서 상승작용을 하지 못하며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만약 물길이 완전히 갈라져 중간 호수나 계곡도 없어진다면 개울가는 계속 썩어가기만 할 것이다. 그 개울가에서 이무기들이 썩어 없어지면 끝날 문제가 아니다. 그 썩은 냄새는 온 나라를 뒤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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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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