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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4

헤겔의 '에덴에서 추방' 해석(Interlude): 우리는 사랑할 수 있을까 ― 황지우 <뼈아픈 후회> 잠시 사랑으로 눈을 돌려보자. 뼈아픈 후회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 나에게 왔던 사람들, /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 ... /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 신상(神像)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 언제 다.. 2024. 9. 8.
헤겔의 '에덴에서 추방' 해석 (2) : 앎의 딜레마 “상처를 입힌 창槍이 상처를 봉합한다.” - 오페라   中  ‘에덴에서 추방’에 관한 이상의 설명은 구약에서든 헤겔 입장에서든 아직 반쪽짜리이다. 왜냐하면 우선 헤겔은 이 상처와 분열을 극복―‘헤겔어語’로 하자면 “지양aufheben”―하고 세계와 “하나 됨을 복원”한다고 선언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에덴에서 머물 때 신의 뜻(곧 그리스의 윤리/인륜에서 습속이었던 것)이 투명하게 세계의 의미를 전해주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스스로의 사고를 통해 다시 세계를 이해하게 될 것이며 “세계와 다시 하나 될 것이다.” 게다가 이 복원은 자의적으로 헤겔이 사고에 부과하는 목표도 아니다. 왜냐하면 사고가 원했던 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세계를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고로 인한 “분열[상태]가 인간에 관한 모든 .. 2024. 9. 8.
헤겔의 '에덴에서 추방' 해석 (1) : 앎의 자기 학대 [  이 글은 2024년 9월 6일 부분 수정되었으며 "앎은 상처다" 이하 부분이 추가 되었습니다. ]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 (창 2:17)   에덴동산 생명의 나무 옆 금지된 열매를 맺는 나무. 한국에서 흔히 ‘선악과 나무’로 부르지만 서양에서는 이를 주로 ‘앎의 나무’(Der Baum der Erkenntnis; tree of the knowledge)로 부른다. 사실 “정녕” 죽을 것이라는 확언에도 불구하고 신은 인간을 동산에서 추방하는 것으로 죽음의 형벌을 대신한다. 그런데 선악을 알게 되는 인간, 우리 말 표현으로 하자면 ‘사리 분별을 할 수’ 있게 되었음이 왜 죽음에 비견되는 추방령의 죄가 될까?   이에 대한 기독교 내 해석이 .. 2024. 8. 30.
헤겔, <철학백과> 1부 논리학 中 "예비적 파악" § 24. 추가 3. 일러두기 : 이하 번역된  24절의 추가 3의 두 번째 단락 헤겔은 철학이 맞닥뜨린 고유한 사태에 대한 종교적 표현이 '에덴에서의 추방'으로 표상됨을 설명하고 있다. 이는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고 추방당하는 장면이 상징하는 바에  대한 헤겔의 런닝 코멘터리라는 점에서도 흥미로운 글이지만, 여기서 나타나는 유대-기독교의 원죄 관념을 활용하여 인간 사유의 출발과  해결과제를 설명한다는 점에서도 매우 흥미를 끈다. 헤겔은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이 인간 정신 및 사고가 자연과의 통일 상태에서 벗어난 것을 상징하고 있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인간이 스스로 사고한다는 것이 원죄가 되며, 심지어 사고능력이 인간에게 필연적인 만큼 원죄 역시 필연적이라고 본다. 이에 따라 .. 2024. 8.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