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이전 글들/도둑맞은 편지를 찾아서 5

낭만적 안티 히어로, 혹은 그래도 세상이 살만한 이유: 다카노 카즈아키 <13계단>, <그레이브 디거>

다카노 카즈아키는 으로 2001년에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면서 혜성같이 등장한 작가였다. 신인작가의 첫 소설이 어쩌다 히트를 친 거라고 대략 우습게 보면 안 되는 것이, 서스펜스를 엮어가는 솜씨와 탄탄한 전개가 단숨에 읽게 만드는 흡입력이 있는, 만만치 않은 기본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뒤이어 발표한 소설들 또한 이 작가가 그저 어쩌다 하늘에서 떨어진 작가는 아님을 보여준다. 거두절미하고, 재미있다는 말이지. 은 사형제도를 정면으로 다룬 소설로 화제가 되었다.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된 후, 일본에서 나름 시청률의 사나이였던 소리마치 다카시를 주연으로 영화화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마 영화는 망했을 거다. 영화가 잘 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은 없다.) 그러니까...이야기는 한 사형수, 사실 ..

후기 자본주의 시대의 범죄소설-<아웃> 기리노 나쓰오, <미스틱 리버> 데니스 루헤인

에르네스트 만델이 탁월하게 지적한 바 있듯이, 범죄소설은 자본주의 사회의 충실한 반영이다. 범죄와 살인은 곧 사유재산과 그 주체인 개인에 대한 공격이며, 범죄소설이 이를 어떻게 다루는가는 자본주의 사회의 작동원리를 직설적으로 혹은 은연중에 드러내기 때문이다. 범죄소설은, 필연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균열과 위기는 어떻게 나타나며, 어떻게 봉합되는가, 다시, 사회는 모든 개인에게 안전한 어떤 것으로 통합될 수 있는 것인가를 드러낼 수 밖에 없다. 고전 미스테리의 이데올로기는 사회가 다시금 통합되어 문제없이 작동하리라는 것이다. 아무리 기괴한 살인사건이라도 반드시 해결되고야 만다. 범죄와 살인은 한정된 사람들 사이,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진다. 현실적이라기에는 지나치게 복잡하고 인공적인 퍼즐-수수께끼가 사건의 ..

한 마리 참새가 말하기를, 누가 울새cock robin를 죽였나....동요살인의 매력, 하지만 바로 그게 말이야.

, 요코미조 세이시//정명원 옮김, 시공사. 2007. 7월 (생각난 김에, (S.S.반다인/김성종 옮김(그 김성종!), 동서문화사, 2003. 1. 동서문화사판 추리문고의 초판은 1977년이다.) 구전되어오는 노래의 내용에 따라 연쇄살인이 벌어진다는 아이디어는 꽤나 흥미롭다. 그런만큼 수많은 미스터리에서 노래에 맞춰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이야기를 잘 활용해왔다. 이를테면 마더 구즈의 노래를 테마로 살인사건이 짜이고 풀려가는 걸작 미스터리들이 즐비하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잊을 수 없는 , 이나, 같은 작품들이 있고, 엘러리 퀸 역시 이를 종종 활용했다(). 아마도 이 계열에 첫 손 꼽힐 작품은 반 다인의 일 텐데, 동요살인의 모든 것을 집약적으로 대표하는 작품이다.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노래란 것은..

그는 아마도, 꼭, 그녀를 죽이고 싶었던 것은 아닐거야 -히가시노 게이고 <범인없는 살인의 밤>

-히가시노 게이고, 윤성원 옮김 랜덤하우스 코리아, 2009. 4.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 소설 7편을 묶은 단편집. 원래 1994년에 나온 책이다. (* 히가시노 게이고의 범인 혹은 범인의 동기에는 일종의 센티멘탈이 있는데, 여기에 수록된 7편의 단편들은 그런 경향을 집약적으로 잘 보여준다. 이 소설들은 조금씩 그 색깔이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범인의 '의도'와 관련해서 읽을 수 있다. 범인의 의도란 건 결국 범죄의 동기에 관한 것이다. 범죄 자체보다 범인에 대해, 특히 그가 왜 살인을 하게 되었는가, 뭐 이런 것에 관련이 되는 것이다. 우아하게 말해서 인간에 대한 관심이라고 해둘 수 있을 것이지만, 사실, 그러기에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주인공들은 너무 통속적이어서 별달리 인간에 대해 말해주는 것이 많..

태초부터 있었던 것들, 살인 그리고 수수께끼.

나는 어렸을 때부터 추리소설을 좋아했다. 지금도 나오고 있(다고 생각하)는 해문출판사의 빨간색 표지를 단 아가사 크리스티 추리문고로 날밤을 꼬박 샌 것이 대체 며칠이었던가. 지금껏 인류가 살아오며 말하고 전하고 쓰고 남긴 많은 것들을 읽고 또 거기에 몇 장을 보태는 사소한 삶을 살고자 한다만, 그 모든 활자들 중에서 단연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은 칼자국에 피범벅이 된 시체거나, 얌전히 고개를 떨군 독살시체거나, 신원을 알수 없이 얼굴이 뭉개진 시체거나, 불에 태워진 시체거나, 토막 난 시체거나, 무언가 둔탁한 것에 얻어 맞아 쓰러져 있는 시체거나, 선명한 줄의 자욱을 목에 남긴 교살시체거나 등등의 시체들 이야기이다. 나는 네크로필리아가 아니므로 좋아하는 것은 '시체들'이 아니라 시체들의 '이야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