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젝 5

Frank Ruda, "놓아줌Entlassen. 헤겔, 희생, 해방에 관하여"

"Entlassen. Remarks on Hegel, Sacrifice and Liberation",  in Crisis & Critique, Jun., 2014 , pp.111-129.   예비작업 : 운명론에서 희생으로 [111]  이하 언급되는 내용은 내가 다른 곳에서 발전시킨 것, 즉 오늘날 숙명론을 옹호할 필요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옹호의 동기는 자유에 관한 문제적 이해理解를 분석하면서 획득되었고, 이러한 분석은 특히 데카르트, 칸트, 헤겔에 의해 정식화되었다. 이 저자들이 비판하는 자유에 대한 문제적 이해의 결정적인 특징은 자유를 능력capacity으로 믿는다는 것에서 구체화된다. 데카르트 및 다른 이들은 그러한 이해의 현상적 효과를 무관(심)한 상태state of indifferen..

논문 번역 2024.09.09

헤겔의 '에덴에서 추방' 해석(Interlude): 우리는 사랑할 수 있을까 ― 황지우 <뼈아픈 후회>

잠시 사랑으로 눈을 돌려보자. 뼈아픈 후회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 나에게 왔던 사람들, /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 ... /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 신상(神像)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 언제 다..

지젝의 글쓰기: 글쓰기의 어려움(2)

2. 분과학문을 넘어 현실에 대한 총체적 인식을 강조하는 것은 오늘날 철학계의 스타 중 하나인 슬로베니아 출신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 역시 마찬가지이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철학자로서의 지젝의 관심사는 오늘날 철학의 전문영역으로 여겨지는 부분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의 관심은 거의 전 방위로 뻗어 있으며, 심지어 영화나 tv 드라마 혹은 농담까지도 그의 사유의 대상이 된다. 물론 이런 식의 폭넓은 관심, 혹은 분과학문 체계를 넘어서는 것 자체가 그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제임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에게도 중요한 것은 분과학문 체계에 갇히지 않고 현실에 대한 총체적 인식에 접근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의 폭넓은 관심 분야는 이러한 그의 태도의 결과로 보는 것이 더 적당할 것이다. 지젝이 오..

자유, 필연성, 헤겔. (2): 한반도의 분단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3. 헤겔이 이 문제를 다루는 곳은 제2권 "본질론"의 제3부 "현실성" 부분이다. 이 부분은 혹자에 의하면 "헤겔 철학의 분수령"을 이루는 곳으로, 헤겔의 중요한 테제인 "실체에서 주체로의 이행," 혹은 "필연에서 자유로의 이행"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이 제3부의 제2절의 소제목 역시 "현실성"인데, 여기서 그는 소위 양상 범주, 즉 우연성과 필연성, 가능성과 현실성에 대해 논술한다. 그는 이를 세 가지 형식에 따라 설명하는데, 이 세 형식은 다음과 같다. a. "우연성 혹은 형식적 현실성, 가능성, 필연성," b. "상대적 필연성 혹은 실재적 현실성, 가능성, 필연성," c. "절대적 필연성." 이 세 형식은 각각 "형식적,"  "실재적," "절대적"인 것이라 말해질 수 있는데, 헤겔은 a와 b에서..

자유, 필연성, 헤겔 (1)

1.한때 옛 소련에서 나온 철학교과서들이 유행하던 시기, 자주 듣던 이야기 중에 "자유는 필연성에 대한 인식"이라는 말이 있었다. 당시에 이 말은 역사의 합법칙적 필연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인용되었는데, 말하자면 역사의 수레바퀴는 누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객관적으로"* 굴러가게 돼 있으며, 이와 같은 역사의 객관적 필연성을 이해할 때 인간은 자유로와진다, 정도의 뜻으로 사람들은 이 말을 사용했다. 즉 "객관적으로 필연적인" 역사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때 맹목적이고 무의미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의미를 이해하고 나면 역사의 법칙은 굴레나 구속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어릴 때 소설책에서 본 후 나에게 인상깊게 남아있었던, "운명은 순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