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 4

헤겔의 '에덴에서 추방' 해석 (1) : 앎의 자기 학대

[  이 글은 2024년 9월 6일 부분 수정되었으며 "앎은 상처다" 이하 부분이 추가 되었습니다. ]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 (창 2:17)   에덴동산 생명의 나무 옆 금지된 열매를 맺는 나무. 한국에서 흔히 ‘선악과 나무’로 부르지만 서양에서는 이를 주로 ‘앎의 나무’(Der Baum der Erkenntnis; tree of the knowledge)로 부른다. 사실 “정녕” 죽을 것이라는 확언에도 불구하고 신은 인간을 동산에서 추방하는 것으로 죽음의 형벌을 대신한다. 그런데 선악을 알게 되는 인간, 우리 말 표현으로 하자면 ‘사리 분별을 할 수’ 있게 되었음이 왜 죽음에 비견되는 추방령의 죄가 될까?   이에 대한 기독교 내 해석이 ..

헤겔, <철학백과> 1부 논리학 中 "예비적 파악" § 24. 추가 3.

일러두기 : 이하 번역된  24절의 추가 3의 두 번째 단락 헤겔은 철학이 맞닥뜨린 고유한 사태에 대한 종교적 표현이 '에덴에서의 추방'으로 표상됨을 설명하고 있다. 이는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고 추방당하는 장면이 상징하는 바에  대한 헤겔의 런닝 코멘터리라는 점에서도 흥미로운 글이지만, 여기서 나타나는 유대-기독교의 원죄 관념을 활용하여 인간 사유의 출발과  해결과제를 설명한다는 점에서도 매우 흥미를 끈다. 헤겔은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이 인간 정신 및 사고가 자연과의 통일 상태에서 벗어난 것을 상징하고 있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인간이 스스로 사고한다는 것이 원죄가 되며, 심지어 사고능력이 인간에게 필연적인 만큼 원죄 역시 필연적이라고 본다. 이에 따라 ..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과 좋은 삶

1. 행복이라는 말은 그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일상적이다. 한여름 심한 갈증을 겪을 때 마시는 시원한 물 한 잔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며, 하루 일과를 끝내고 가족과 평화로운 저녁시간을 함께 보낼 때 우리는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뤄냈을 때, 예컨대 열심히 준비해서 원하는 학교나 직장에 들어가게 됐을 때도 우리는 행복감을 맛본다. 이러한 경우들을 일반화해보면, 행복이란 내 안의 어떤 심리상태, 그것도 나쁜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감정이나 느낌인 것처럼 보인다. 특히 그것은 내가 뭔가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혹은 그 추구의 결과로 뭔가를 성취했을 때 내면에서 느낄 수 있는 기쁨이나 만족감과 관련되는 듯하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과 연관되는 이러한 긍정적 감정, 즉 감각적..

내릴 수 없는 기차 3: 맑스와 상품물신 (2)

3. 교환의 양적 비율이 갖는 규범적 힘이 실제 교환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애초에 교환에 참여할 때 행위자의 관심은 상품의 사용가치에 있다. 사용가치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면 애초에 그는 교환에 참여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교환과정에서 이 관심은 사라진다. 상품은 교환가치로 환원되어 행위자들의 관심은 교환가치로 이동한다(하인리히, , 73 참조). 즉 그들은 이제 “자신의 생산물로 자신들이 타인의 생산물을 얼마만큼 얻을 수 있는가, 그래서 생산물들이 어떤 비율로 교환되는가”(MEW23, 89, 김수행 역, 1-상, 94, 번역 일부 수정)에 우선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은 우리 사고가 개념을 형성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후자의 과정을 이해하기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