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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문 독서일지

[행복의문 독서 일지]『진보와 빈곤』(헨리조지, 비봉)

by 행복의문 2024. 11. 19.
남기업 소장님이 주관하는 『진보와 빈곤』 (헨리 조지, 비봉) 강의를 신청했다. 그의 일대기를 소개한 책을 보다가 헨리 조지의 기일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게 되어 그의 삶을 소략해 보고자 한다.

 

헨리 조지를 처음 접한 것은 대학 1학년, 유시민이 쓴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에서였다. 정외과 학회 '정치경제학연구회'에서 진행했던 커리큘럼이었는지 아니면 동아리 세미나였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말이다.

 

헨리 조지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타임즈] 식자공이었던 그는 당시 주필이었던 노아 브룩스에 의해 발탁되어 기자가 되었다. 어린 시절 방랑과 모험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던 그는 한 상원의원이 돈을 댄 [이브닝 포스트]지의 발행인이 되었으나, 그 상원의원이 태평양철도회사의 독점을 지지하는 기사를 내라는 부당한 요구에 저항, 펜을 놓게 된다.

 

그후 우연히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마련해준 공무원 자리를 통해 필생의 역작인 『진보와 빈곤』을 쓰게 된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해 헨리 조지는 이렇게 말한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거대한 수수께끼가 떠올랐다고. 그 수수께끼를 해명하기 위해 3년여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비밀을 알게 되었다. 『진보와 빈곤』은 이 비밀을 밝히는 책이라고. 마지막 페이지를 마쳤을 때 전해오는 이야기에 다르면 헨리 조지는 엎드려 어린아이처럼 울었다고 한다.

 

그가 말했던 수수께끼는 무엇이었을까? 그 수수께끼는 『진보와 빈곤』 서문에 나온다.

 

"증기와 전기의 이용, 개선된 생산공정과 노동절약적 기계의 도입, 고도의 분업과 거대한 생산 규모, 놀라운 유통시설 (...) 사람들은 (...) 당연히 생산력이 대폭 증대됨에 따라 빈곤이 일소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 그러나 현실은 실망의 연속이었다. 꼬리를 문 발견과 발명은 하층민의 노동을 덜어 주지도 빈민에게 풍요를 가져다주지도 않았다. (...) 문명세계의 모든 곳에서 불황과 비자발적 실업, 자본의 낭비와 기업의 도산, 노동자계층의 빈곤과 불안의 소식이 들려온다. (...) 이처럼 진보와 함께 빈곤이 따라오는 현상은 우리 시대의 거대한 수수께끼이다. 이것이야말로 세계를 괴롭히고 정치/ 종교/ 교육이 해결하지 못하는 경제/ 사회/ 정치적 문제의 근간이 되는 핵심적 사실이다. "

 

헨리 조지는 진보와 함께 빈곤이 따라오는 현상의 원인을 지대에서 찾았다. 하여 '토지가치세' 또는 '단일토지세'와 같은 조세제도를 통해 지대를 징수하고, 산업과 소비자에 대한 다른 조세를 폐지하면서 시장이 보다 건강하게 작동하게 만들고자 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즉 생산에 필요한 토지를 마음대로 이용하지만, 토지의 소유로 인해 발생하는 불로소득은 세금으로 징수해 만인의 복지를 위해 사용하려는 발상이었다.

 

헨리 조지의 아이디어는 왜 당시에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헨리 조지 이전시대의 정치경제학자였던 리카르도 또한 차액지대라는 개념을 통해 지주계급을 비판했다. 지주는 지대를 통해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사회의 많은 부를 자기 몫으로 가져가 버린다. 따라서 리카르도에게서도 지주는 모든 계급의 이해와 충돌하고, 불로소득으로 사회 부를 잠식하는 계급으로 비판받았다. 만약 리카르도가 살았던 시대처럼 지주와 자본가, 그리고 노동자가 서로 대립적이었다면 헨리 조지의 아이디어는 다수의 지지로 제도적 수용 과정을 밟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헨리 조지가 살던 시대는 리카르도의 시대와 달랐다.

 

과거 리카르도가 살았던 시대는 지주와 자본가가 서로 계급으로 나뉘어 대립했지만, 헨리 조지의 시대에는 이미 자본가들 자신이 가장 큰 지주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헨리 조지의 아이디어는 당시에 큰 주목을 받았지만 그만큼 비난과 조롱, 그리고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이는 지금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앞서 남기업 소장의 『땅에서 온 기본소득 토지 배당』에도 나오지만 이미 우리나라 기업들이 엄청난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지주라는 사실과도 연결되는 지점이다. 그래서 헨리 조지는 '우리 세계의 도덕을 문란케 만드는 자'라는 경멸과 증오를 받았다고 한다.

 

헨리 조지는 말년에 자신이 꿈꾸었던 '단일토지세'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건강상의 이유로 의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뉴욕 시장 선거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1897년 10월 29일 시장 선거를 나흘 앞둔 날 헨리 조지는 못다한 꿈을 안고 세상을 떠났다.

 

『진보와 빈곤』은 이렇게 시작한다.
"부와 특권의 불평등한 분배에서 발생하는 죄악과 비참함을 보면서
더 나은 사회를 이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독자에게 바친다."
샌프란시스코, 1897년 3월 헨리 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