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상품물신을 이해하는 데 추상이 그토록 중요한가?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그는 상품물신을, 아니 상품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맑스는 <자본>의 출발점인 '상품'장이 자본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임을 자인한 바 있는데, 사실 이 어려움의 많은 부분은 바로 추상과 관련된다.*
<자본>은 “부르주아 사회의 … 경제적 세포형태”(MEW23, 12, 김수행 <자본> 1-상 4)인 상품의 의미를 묻는 데서 시작한다. 상품이란 무엇인가? 상품은 교환을 위한, 즉 사고 팔 수 있는 물건이다. 하지만 맑스는 이 뻔한 답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교환이 일반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은 “자명하고 평범한 물건”이 아니라 너무나도 이상한 것, 즉 “형이상학적 궤변과 신학적 잔소리로 가득찬 기묘한 물건”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상품은 얼핏 보면 자명하고 평범한 물건으로 보인다. 그러나 상품을 분석하여 보면, 그것은 형이상학적 궤변과 신학적 잔소리로 차 있는 기묘한 물건이라는 것이 판명된다. 상품이 사용가치인 한, … 그 상품에는 조금도 신비한 요소가 없다. … 그런데 책상이 상품으로 나타나자마자 초감각적 물건으로 되어버린다.
(MEW23, 85, 김수행 역, <자본>, 1-상, 90)
맑스는 여기서 상품의 이중성에 초점을 맞춘다. 유용한 감각적 물건인 한 책상에는 신비적 요소가 전혀 없다. 하지만 그것은 상품으로 등장하자마자 “초감각적 물건”이 된다.** 그래서
책상은 자기의 발로 마루 위에 설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상품에 대해서 거꾸로 서기도 하며, 책상이 저절로 춤을 추기 시작한다고 말하는 경우보다 훨씬 더 기이한 망상을 자기의 나무 두뇌로부터 빚어낸다.
(같은 곳)

이러한 상품의 “초감각적” 성격, 혹은 그것의 “신비한 요소”가 바로 '상품'장 제4절의 제목에서 말하는 상품의 "물신적 성격"이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이와 관련된 맑스의 서술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것은 내용 자체의 난해함 탓도 있지만 맑스가 자신의 성취를 서술할 적절한 언어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맑스는 헤겔을 비롯한 독일 관념론자들의 고도로 추상화된 서술방식에 대한 반발로 주로 뉴턴적 세계관에 기초한 기계론적이고 물질적인 유비와 같은 낡은 수단에 기대 자신의 발견의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맑스 독자라면 그의 발견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지적 도구 내지 무기를 갖고 있다. 그것은 소쉬르 이후의 기호학과 구조주의 언어학이다.***
이러한 학문의 도움을 받는다면 상품이 “초감각적 물건”이라는 맑스의 진술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가? 바로 여기서 맑스는 상품이 기호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기호란 무엇인가? 에코에 따르면 기호는 “다른 것의 대체물로 취급될 수 있는 ... 모든 것”을 말하고, 기호학은 “모든 것을 ...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사유방식을 의미한다.**** 즉 기호의 핵심은 바로 뭔가를 다른 것으로 대체 혹은 대리한다는 데 있다. 그래서 맑스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상품 역시 다른 상품들과 관계를 맺자마자 이것들을 대리하는 기호로서 등장한다는 것이다. 책상이 상품이 되자마자 책상은 하나의 기호가 된다.
하지만 기호의 세계는 일상의 세계가 아니며, 오히려 그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의 세계이다. 이곳은 “형이상학적 궤변과 신학적 잔소리로 가득[차]” 있으며, 이곳에서는 책상이 자기 발로 서서 자신의 나무 두뇌로 기이한 환상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기호학적 대체는 같은 질서 안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이 아니다. 대체를 통해 우리는 근본적으로 다른 질서로 이동한다. 우리는 일상의 세계로부터 관념의 세계로, 사물의 세계로부터 기호의 세계로 옮겨가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경험적 대상이 없을 때에도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되고, 여러 개별자들을 하나로 묶어 단번에 지시할 수 있는 보편적 인간으로 거듭난다.

이러한 이동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경험적 질서와의 단절이 일어나야 한다. 경험적 질서와 단절하고 이 질서의 해체를 만들어내는 일, 나아가 경험적 세계와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로 도약하는 일, 이것이 바로 추상이 하는 일이다. 맑스가 그려내는 상품의 세계 역시 이러한 추상의 결과이다. 다만 하나의 세계가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일 때, “자명하고 평범한 물건”을 “형이상학적 궤변과 신학적 잔소리로 가득찬 기묘한 물건”으로 대체하는 도자기와 책상의 춤은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관념적 추상이 아니라 현실적 추상이다.*****
*맑스는 <자본> 제1판 ‘서문’에서 ‘상품’장의 예외적인 어려움을ㅡ이 장이 가지는 특별한 중요성과 함께ㅡ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첫부분이 항상 어렵다는 것은 어느 과학에서나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도 제1장, 특히 상품분석이 들어있는 절을 이해하기가 가장 힘들 것이다. […] 인간의 지혜는 2,000년 이상이나 이 화폐형태를 해명하려고 시도하였지만 실패한 반면에, 훨씬 더 내용이 풍부하고 복잡한 형태들의 분석에는 적어도 거의 성공하였다. 무슨 까닭인가? 발달한 신체는 신체의 세포보다 연구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경제적 형태의 분석에는 현미경도 시약도 소용이 없고 추상력Abstraktionskraft이 이것들을 대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노동생산물의 상품형태 또는 상품의 가치형태가 경제적 세포형태다. 겉만 관찰하는 사람에게는 이 형태의 분석은 아주 사소한 것을 늘어놓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사실 그것은 아주 작은 것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 작은 것들은 미생물 해부학이 다루고 있는 그러한 종류의 작은 것이다. / 가치형태에 관한 절을 제외한다면, 이 책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이것은 물론 무엇이건 새로운 것을 배우려 하며 따라서 또 독자적으로 사색하려는 독자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MEW23, 11-2, 김수행 <자본> 1-상 3-4.)
**정확히 말하면 상품은 “감각적”인 동시에 “초감각적”인 것이다. 그리고 (사용가치와 가치로서의) 이러한 상품의 이중성은 이후 상품과 화폐의 분리와 대립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 맑스에게 화폐의 등장은 필연적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논리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상품의 사용가치와 가치는 내적으로 대립한다. 둘째, 내적 대립은 반드시 외화해야 한다. 따라서 가치는 반드시 외적 형태로 현상해야 한다. 이것이 화폐이다.
***McNeill, Desmond, Fetishism and the Theory of Value: Reassessing Marx in the 21st Century, Palgrave Macmillan, 2021, 141-2 참조.
****Eco, U. A Theory of Semiotics, London: Macmillan, 1977, 16과 7. McNeill, 앞의 책 176에서 재인용.
*****맑스의 다음 구절 참조. “다른 모든 세계가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일 때 그와는 다른 것들을 고무하기 위해 도자기와 책상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는 것을 우리는 상기한다." (MEW23, 85n25, 김수행 역, <자본> 1-상, 90 주 27. 번역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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