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신분석 내부의 분열과 반기, 혹은 분기들(아들러, 융, 클라인 등)과 함께 정신의학(psychiatry)과 심리치료(psychotherapy) 내부에서의 비정신분석적인 접근법들(non-psychoanalytic approaches)에도 불구하고, 왜 정신분석은 그토록 광범위한 인기를 누리는가? 

2. 일단 정신분석 이론은 (프로이트의 바람과는 달리) 마음의 과학(science of mind)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것이 현대 정신의학, 심리학, 신경과학의 공통적인 견해이다. 특히 인지신경과학은 프로이트의 이론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입장에 서있다. 마크 솜즈처럼 정신분석의 통찰을 신경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지지하려는 연구자가 없지는 않으나, 그 역시 '주관적 체험'을 객관적인 신경과학과 통합하려는 의도에서 정신분석의 일부를 받아들인 것일 뿐, '억압' 등의 많은 개념을 과학적으로 정의하거나 다루기에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인정한다. 

3. 심리치료의 영역에서도 정신분석에 근거한 치료법이 (치유효과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다른 치료법에 비해서 월등한 효과를 거두고 있지는 못하다. 이미 수백 가지의 치료 기법이 개발되어 있는 상황에서 정신분석은 대화치료의 한 가지 방법으로 채택될 수는 있으나 그 효능과 효력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4. 일찍이 칼 야스퍼스부터 폴 리쾨르, 위르겐 하버마스 등은 정신분석을 과학의 영역에서 구제해 해석학적 이론으로 재해석/재구축하려는 시도를 했다. 이들에 따르면 정신분석은 (프로이트의 믿음과는 달리) 심리에서의 인과적 작용을 파악하려는 과학적 연구가 아니라 징후(symptom)를 통해 (무의식적인) 의도와 의미를 해석해내는 해석학적 이론(혹은 이론틀)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돌프 그륀바움은 이러한 재해석이 프로이트 이론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며 '해석', '의미', '의도' 등의 애매함을 이용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고, 따라서 정신분석을 해석적 인문학의 토대로 삼으려는 시도는 잘못된 것이라고 통렬하게 비판하였다. 

5. 자, 그렇다면 마음의 과학으로도, 치료 기법으로도, '마음의 해석학'으로도 서기 어려운 정신분석을 어떤 근거로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분야에서 받아들이고 사용할 수 있을 것인가? 

(to be continued)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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