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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01 운명 by 알 수 없는 사용자 5

1789년 7월 14일 파리의 군중들은 바스티유로 몰려갔고 3년 뒤 프랑스는 공화국을 선언하였다.  몇 달 뒤 루이 16세는 처형되었고, 무명의 포병 장교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독재자에 이르는 출세 가도를 걷기 시작하였다. 1792년 조지 워싱턴은 미합중국의 대통령이었고, 괴테는 바이마르에서 공작의 극장을 감독하면서 광학에 관한 연구내용을 출판하고 있었다.  하이든은 그 명성이 절정에 이르렀으며, 모짜르트의 몸은 빈 공동묘지의 빈민묘역에 비명도 없이 누워 있었다. 1792년 11월 초 22세가 채 못 된 루드비히 판 베토벤이란 이름을 가진 야심적인 젊은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가 라인 강에 있는 본에서 빈으로 승합마차로 1주일 걸리는 500마일의 여행을 하고 있었다. 베토벤은 새롭고 강력한 힘이 인간사회에 팽배해 있던 역사적인 순간에 등장하였다......

살다 보면 누구나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그러하다고 생각하기에- 의외로 지나치고 스쳐가는 일이 많습니다. 때로는 예리하게도 그 간극을 눈치채기도 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아니 실제 바쁘기도 해서 그냥 갑니다. 어느 날 아주 드물게 시간이 나서, 혹은 사소한 계기와 맞닥뜨려 괜시리 자신에게 자신의 무심함이 미안했던 듯 아무렇게나 쑤셔넣었다가 말짱하게 닫아뒀던 서랍을 열어 봅니다. 별게 다 나옵니다.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하나의 성냥갑에서 그 까페의 이름과 들락거렸던 지난 시절과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헤어진 사연, 마침 그 때 옆자리에 있었던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자아내던 분위기까지 펼쳐집니다. 그 때 마셨던 커피맛도 재떨이에 쌓였던 담배꽁초들의 형상도,,, 그러더니 솔도 청자도 다 불려나옵니다. 그렇게 한 통속으로 사람의 머릿속과 가슴속을 유영하는 그 일련의 과정을 감지하는 또다른 자신도 여전합니다. 미토콘드리아와 시냅스의 활약은 눈부셔서  완전히 사장되었던 기억의 끄트머리조차 부활시키는 기능이 기막힙니다. 내친 김에 이것 저것 다 뒤집니다. 펼쳐지는 세계가 무한할수록 그러고 있는 나는 어느 순간 지칩니다. 다시 지금 여기에서 바쁜일에 대한 기억체계가 과거의 세계를 넘보기 시작합니다. 소기의 목적달성은커녕 일단 정리나 할까 하던 야심도 저멀리 사라져 갑니다. 약속시간 늦을까봐 얼른 닫아버립니다. 다음은 언제가 될런지 정말 기약없습니다... 그래도 하나쯤은 건졌다고 자위하기로 합니다. 잘 안다고, 그래서 우리는 아니라고, 안 가봐도 뻔하다고 잘난 척 했었는데, 다시 보니 별로 아는 것도 없고 그 터무니없는 자신감은 정체불명입니다.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잠깐 선회하기로 했습니다. 그 처음이 진정한 처음이기도 하지만 무작정의 처음만은 아니겠지요.

이 뜬금없는 변을 늘어놓는 것도, 정말 일천한 지식을 올리게 된 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이겠지요. 물론 블로그 열면서 '운명을 거스르는 자는 끌려간다'는 둥 자발성을 빙자한 그 누군가의 은근한 엄포가 만만치 않았음에요.
 
어린 시절 처음 들었던 <운명>의 1악장 첫마디, 너무도 익숙한 4음의 동기가 그리 강하고도 친숙하게 뇌리에 평생 박혀버리는 음악은 흔하지가 않지요.  이 4음의 동기는 다른 3개의 악장에서 여러 형태로 변형되어 계속 나옵니다. 베토벤은 항상 '나는 운명과 싸울 것이다. 운명이 나를 정복하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했다는데, 그의 결의가 음악에 투영된 것으로 해석을 합니다.

승리를 위한 투쟁은 c단조의 곡이 마지막 악장에서 c장조로 바뀌면서 선포됩니다. 3악장 단조에서 4악장 장조로의 전조는 스케르초에서 피날레로 중단없이 이어지는 영감적인 악절에서 이루어집니다. (악장의 구별은 있지만 그대로 이어지는 파격적인 이 방식은 5번 피아노 협주곡 <황제>에서도 2,3악장이 구분없이 그대로 이어지는 데서 나타납니다.)  c장조로 트롬본이 전면에 나서는데, 교향곡의 경우 여기서 처음 사용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병적인 '우수'의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그가 귀머거리인 데서 기인할 것입니다. 그의 유서라 불리는 편지를 보면 "이 절망이 얼마나 컸는지 나는 삶을  마감했을 것이다. 죽음 앞에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 것은 나의 예술이었다. 단 하루만이라도 순수한 즐거움을 허락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물론 시기적인 차이가 있지만, 그의 운명에 굴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는 이렇게 음악으로 살아남아 우리에게 너무나 값진 감동을 줍니다. 베토벤 이전 시대의 음악가들이 종교를 위하거나 후원자의 주문에 맞추거나 당시의 지배 계층의 이념이나 취향에 부합하는 음악을 만들었다면, 베토벤은 자기 자신을 위해, 다시 말하면 이상적인 보편적 청중을 위해 곡을 썼기 때문에, 그의 음악은 또다른 특별한 감동을 주는 요인이 됩니다. 그의 양식이 독자적이고 주관적이긴 했지만, 그런 음악적 기술보다 오히려 혁명적인 요소, 자유, 충동적이고 신비하고 악마적인 정신 즉 음악이란 자기 표현의 한 방법이라는 것이 그의 기초 개념이었던 겁니다.
 
이 글이 계기가 되어 다시금 운명을  들어봤습니다. 다른 음악가들도 그렇지만 베토벤 음악도 특히 2악장을 귀기울여 들어보시기를 바랍니다. 3,4악장의 부단한 내면과 바깥의 밀고 당기고 길항하고 포용하다가 마침내 거듭나는 정신에 가슴이 벅찹니다. 그 전에 그가 자신의 내면적인 갈등과 그 깊은 심연을 헤매면서 얼마나 고독했다가 작은 발견에 기뻤다가 하는지, 그리고 그 길을 찾아가는 온 우주의 하나뿐인 자신으로 가는 세계에 얼마나 진지하고 고통스럽게 한 발 한 발 내디뎠는지 겨우 알 것 같습니다. 그 험한 오솔길을 만들며 헤쳐가는 그의 뒷모습이 보일 듯 말 듯 합니다. 카라얀의 베를린 필 2악장과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빈 필 2악장을 비교해서 들어보면 더 재미날 것도 같네요(너무나 많은 훌륭한 연주가들의 작품들은 말 할 것도 없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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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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