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8.12 미디어법 관련 쟁점 총정리*^^*(2) by vinoveri 2
  2. 2009.06.08 김훈과 대한민국 우파가 살아가는 법 by vinoveri 7

(1편에서 이어집니다.)

나아가, 아무리 국민들이 뭐라 그래도 그냥 밀어붙이면 어떻게 할 거냐,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냐, 뭐 이런 얘기도 나올 수 있습니다. 어차피 칼자루를 쥔 쪽은 따로 있는게 아니냐는 말이지요. 맞습니다. 그럼, 뭐 할 수 없지요. 어차피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인데, 그가 임기 동안에는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민주주의란 그런 것이죠. 그러니, 선거가 중요한 겁니다.ㅎㅎ

그런데 국민들이 말을 안 듣고 다들 나서서 저항을 하고 정권의 적이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일방적 정책이 이어지면, 납득하지 못한 국민들이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우리 사회는 점점 갈등이 심화될 것이구요. 이로써 생기는 정치적 부담은 모두 정부에게 돌아가게 되지요.

정치적 부담이 커진다는 것은 정치적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아무도 열심히 일하지 않는데 앞에서만 끌고 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맘이 안 맞는 사람들하고 함께 일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법입니다.) 공무원에게 보내는 MB의 음성/문자메시지를 90% 이상의 공무원이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지워버린다고 하고, 또 내년부터 서머타임한다고 하니까 60% 이상의 국민이 일단 반대부터 하고 봅니다. 정부가 무슨 일을 해도 국민들은 일단 반감부터 울컥, 생기는 상황인 거죠. 

(지금의 이명박 정권이 취하고 있는 이러한 정치적 태도를 정치학에서는 흔히 "위임(委任)주의"라고 부릅니다. 국민이 날 뽑은 것은 나에게 전권을 위임한 것이다, 임기 중에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이며, 모든 평가는 임기 후에 받겠다, 라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정치적 반대세력과 협의하고 타협하는 일에 무관심합니다. (위임주의의 대표적 사례는 영국의 마가렛 대처입니다.) 반대로 다수당이 소수파와의 대화와 타협을 통해 정책을 결정해 나가는 태도를 "의회주의"라고 부릅니다. 의회주의에 비해 위임주의가 정치적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아담 쉐보르스키의 진단입니다. 이 부분은 민주당 국회의원 김부겸의 글에서 빌려와 문맥에 맞게 고쳐 썼습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28&articleId=13680)

이건 정부 쪽에서도 상당한 정치적 부담이고 정치적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데 이걸 당사자들이 위기라고 느끼고 있느냐?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정부 쪽에서 이걸 위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소수인 것 같고, 그냥 잘 돌아가고 있다, 진작 이런 식으로 할 걸 그랬어,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은 다수인 것 같습니다. 그게 더 큰 문제이고, 그래서 국민들은 더 큰 절망을 느끼는 것이지만, 암튼 정부 쪽에서도 이건 힘든 사태입니다. 사람 하는 일이 억지로 해서 되는 일이 없는 법이지요. 무리하게 일을 진행하면, 반드시 뒷탈이 나기 마련이구요. (그래서 '중도실용'도 내세우고, '서민'들과의 스킨쉽도 늘이는 것이지만, 이걸로 되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왔습니다. 이 정부에 기회가 있었다면, 그건 바로 작년 촛불 때였죠.) 

끝으로, 미디어법이 헌재에 통과되어 실행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해 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조중동이 TV방송을 하게 되면, 국민들이 세뇌라도 되는 양 호들갑을 떠는 사람도 있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는 우리 국민들의 정치의식, 시민의식이 만만치 않다고 보기 때문이지요. 물론 조중동 TV가 방송을 시작하면, 그리고 보수적인 시각에서 일방적으로 보도를 하게 되면, 지금보다 정보노출에 있어서 편향된 시각들이 전달될 가능성은 커지겠죠. 하지만 그만큼 매체에 대한 신뢰도는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공정한 보도를 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이 상황은 유신과 5공 때를 생각해 보시면, 잘 이해가 될 수 있습니다. 유신과 5공 때는 모든 언론이 검열을 받아야 하는 관변언론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매체는 정권의 시각만을 일방적으로 대변해야 했죠. 하지만 이로써 매체의 신뢰도는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국민들은 언론의 말을 거꾸로 이해했습니다. 언론에서 오늘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하면, 국민들은 오늘 무슨 일이 있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신문방송 모든 매체의 신뢰도를 합한 것이 '카더라방송'의 신뢰도를 못 당하던 시절이었죠. 만약에, MBC와 YTN이 조선일보와 똑같은 목소리를 내고,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이 정부에서 하는 일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천재지변에 준하는 세상이 온다면, 그런 일이 만약에라도 일어난다면, 그 때는 그럼 모든 국민들이 동일한 생각을 하고 말 잘 듣는 학생들처럼 정부 방침을 따라갈까요? 전 그럴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때는 다시 사람들이 찌라시를 뿌리고, 유언비어를 더 신뢰하는 세상이 되겠죠. 물론 이제는 그 찌라시가 트위터나 기타등등을 통해서 전달되겠지요. 

(이와 관련된 상반된 두 시각을 한번 비교해 보시죠. 먼저 홍세화의 "파시즘 경고와 언론법"입니다. 그는 언론장악을 통해 국민들이 세뇌가 될 수도 있음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SERIES/114/365425.html 그리고 이와 상반되는 시각의 박태견칼럼입니다.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code=NAC&sch_key=&sch_word=&seq=52772 그는 조중동의 방송진출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지요. 논의의 초점이 국내 언론환경과 관련되어 있지는 않지만, 다음의 인터뷰에서 정세현이 보여주는 관점 역시 비슷합니다. 그가 하고싶은 말은 제목이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디어법으로 정보 질서 장악…그게 되겠습니까?"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0803233016&section=05 저는 후자의 입장을 지지합니다.) 

민심을 살피는 정책을 통해 국민들의 마음을 얻으려 하지 않고, 언론환경을 유리하게 만들고 정보를 통제해서 국민들을 끌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미디어법이 통과되면, 그래서 조중동방송이 생기면 국민들이 세뇌라도 되는 양 말하는 사람들이나 우리 국민들의 의식수준을 믿지 못하기는 매 일반입니다. 저는 이런 의견에 반대합니다. 혹세무민을 하기에는 우리 국민들이 그동안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며 배워온 것이 만만치 않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조중동의 신뢰도 하락이 이에 대한 구체적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최근의 <시사인> 여론조사를 보면, 자랑스럽게도 가장 불신하는 언론 1,2,3위를 조중동이 나란히 차지했습니다. 그들의 신뢰도는 떨어졌다 해도, 정치적 영향력은 여전하지 않냐고 말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는데, 그들의 영향력 역시 예전같지 않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최근 미디어악법투쟁에 올인하고 있는 민주당은 조선일보, 동아일보와 맞짱을 뜨고 있습니다. 왜곡보도가 도를 넘어섰다는 것이죠. 근데 이게 저한테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합니다. 노무현이 대통령후보로 뜨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조선일보와 맞짱을 떴다는 것 아닙니까? (당시 대통령이었던 김대중 역시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죠?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 것은 조선일보와 싸웠기 때문이야.. 이 자리를 빌려, 김대중 선생님의 쾌유를 빕니다.ㅠㅠ) 그때 정치권에서는 모두들 노무현을 비웃었습니다. 쟤가 뭘 몰라서 저러지, 저러다 크게 다치지ㅉㅉ.. 하는 게 당시의 정서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민주당 전체가 조선일보와 싸울 수 있는 세상이 된 겁니다.

이러한 영향력 하락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 조중동입니다. 이렇게 무리를 해서라도 미디어법을 개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바로 그 증거죠. 종이신문은 그 분야 전체가 사양산업이고, 정치적 영향력은 예전같지 않고.. 그래서 어떻게든 살아남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상황이죠.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잘 안 될 겁니다. 조선일보 사장도 그런 말을 했다지요? 방송에 진출하면, 빨리 망하고, 방송에 진출하지 않으면, 서서히 망한다고. 빨리 망할지 서서히 망할지는 모르지만, 암튼 잘 안 될 겁니다. 

미디어법 날치기 이후, 정부여당은 YTN 사장을 잘라 돌발영상 못하게 하고, MBC 방문진 이사진을 뉴라이트로 재구성했습니다. 이를 통해 유리한 정보만을 걸러서 내보내고 홍보를 강화하면 여론도 좀 나아지리라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쓸데없는 일에 목숨걸고 있습니다. 언론사 사장들을 다 갈아치워도 이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그런 식으로 해서 여론을 장악하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문화적 지체를 겪고 있는 올드보이들이나 이걸 모를 뿐이지요. 근본적으로는 민심을 거스르면서 잘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기도 하구요. 

포카판에서 상대의 패를 다 알고 있으면, 내 패가 별 게 없어도 별로 겁나지 않습니다. (근데, 지금은 상대의 패도 별 게 없지요?ㅋ) 그럼 나만 잘 하면 됩니다. MBC의 엄기영 사장이 최근 리스크가 드러나면 그건 이미 리스크가 아니라는 멋진 말을 했습니다. 이제부터 리스크를 잘 관리하면 된다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이 싸움은 우리만 잘 하면 이길 수 있는 싸움입니다. 짜증나는 일들이 많은데, 너무 짜증내지 마시고 느긋하게 같이 싸우면 이길 수 있습니다. (최근에 김대중 선생님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잘못하는 일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는 명확한 의사표현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나아가, 인터넷에 글도 쓰고, 담벼락에 낙서라도 해야 된다고 하면서 일상적 실천에 대해 강조하셨습니다. 작은 불꽃 하나가 큰 불을 일으키는 법이지요.)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vinove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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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날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파는, 누가 뭐래도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어왔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을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어왔다고 할 때, 그들이 떠올리는 것은 크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하나는 "빨갱이들"로부터 나라를 지켰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신들의 손으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왔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들의 이러한 자부심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 자부심만큼의 권리가 이들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들어온 것에는 이들의 이만큼의 기여가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적극적으로.)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이러한 그들의 기여가 다른 모든 것들을 합리화할 수는 없다. 국가를 수호한다는 명목 하에 반정부 민주화세력을 빨갱이로 몰아 제거하고, 먹고 사는 문제 이외의 모든 것들을 무가치하게 만드는 것이 용납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들의 자부심을 근거로 나머지 모든 문제를 뭉갤 때, 대한민국의 "보수우파"는 "수구꼴통"이 된다.

김훈은 수구세력과 구분되는, 오늘날의 흔치 않은 "건강한" 보수우파 중 한 사람이다. 특히 그는 산업화세력의 멘탈을 자신의 소설과 에세이들에서, 또 언론을 통한 발언에서 적극적으로 드러내왔다. 나는 그의 많은 발언이 경청할 만하다고 생각하며,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산업화 세력의 권리주장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즉 "합리적으로" 드러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김훈을 읽는 일은 오늘날의 산업화세력을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이러한 "합리적" 발언에 충분히 공감하는 일이 중요하고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오늘날처럼 소위 "좌파"와 "우파"가 서로 정서적으로 대립하고 감정적으로 공격하는 시점에서는 더욱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비판은 충분한 공감 이후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2.
많이 지적되었듯이, 김훈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아버지와의 갈등이다. 김훈의 아버지는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김구의 수발을 들"었고, 해방 후에는 온갖 좌절을 겪으며 술로 분노를 터뜨리는, 하지만 "밥을 온전히 먹을 수 있는 노동"이 아닌 신문기자나 소설가라는 생업을 가진 자였다. (김훈, <바다의 기별>, 24-28.)

로쟈는 이를 "대장부의 길"이라 이름붙인다(로쟈, http://blog.aladdin.co.kr/mramor/841840). 대장부는 먹고 사는 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에게는 오직 자신의 "뜻"을 펼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바다의 기별>에는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가 소개되어 있다. 중1짜리 김훈이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재밌게 읽고, 그에 빗대어 술을 마시고 있는 아버지에게 말한다. "아버지는 꼭 허클베리네 아버지 같아요."("허클베리의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에다 돈은 안 벌어오고 집에도 안 들어오는 사내였다") 이 때 술 취한 그의 아버지는 허공을 올려다보다 한참 뒤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광야를 달리는 말이 마구간을 돌아볼 수 있겠느냐?" 김훈의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김훈, <바다의 기별>, 27.))

하지만 "대장부의 ‘명분’은 우리를 한번도 밥 먹여주지 않았다."(로쟈, 같은 곳)  우리를 밥먹여준 것은 언제나 가장의 밥벌이였다. 김훈이 선택한 것은 "가장의 길"이다. 가장이 할 일은 가족을 먹여 살리는 일이다.

(김훈이 겪은 아버지와의 불화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그의 아버지는 아주 엄하고 혹독한 분이었는데, 자주 ‘세상을 저버린 자’처럼 세상에 대한 분노와 허무를 무지막지한 술로 달랬다. 그리고 그런 날 새벽이면, 소년 김훈은 해장국 심부름을 가야 했다고. 어느 추운 겨울날 새벽에도 그는 해장국 심부름을 다녀오다가 그만 뚝배기를 바지와 길바닥에 다 엎지르고 말았다. 새벽녘 길바닥에서 그는 목놓아 엉엉 울면서 절대로 아버지와 같은 삶은 살지 않으리라고 다짐한다."(로쟈, 같은 곳, 김훈, 박래부의 <문학기행> 서문에 나온 내용을 로쟈가 요약한 것임.))

바로 이런 점에서 김훈은 오늘날의 우파의 환타지를 대변한다. "도덕적 명분보다 중요한 것은 먹고 사는 일이다!" 지난 시기 <허준>과 <하얀 거탑>이 민주화세력(이른바 "좌빨")의 환타지를 대변했다면, 그리고 이 환타지의 정치적 결실이 노풍(盧風)이었다고 한다면, 그에 대한 산업화세력의 응답은 김훈이었다.

(김훈은 후배 기자들과의 어느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의 우익, 대한민국의 산업화세력으로서의 자부심을 공공연히 드러낸다.

"386이 리더가 됐잖아. 근데 걔들은 사회의 물적 토대를 건설한 경험이 전혀 없는 아해들이야. 그래서 도덕적인 거지. 인간의 선의를 모아 가지고 현실을 개선할 수 있다는 낭만주의, 아름답지. 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거든. 엄청난 세금을 내고, 반드시 아들을 군대 보내는 것은 우익이거든." (리얼리??)

“우익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세상을 책임지는 거야. 좌익과 진보는 세상을 맡을 수 없어. 물적토대가 없으니까. 비참하게도 우리 시대의 물적토대의 역사는 우익이 만든 거야. 좌익이 반항하더라도 우익 토대 아래서 반항한 거라고. 그리고 한국사회의 물적 토대를 건설한 사람은 박정희 대통령이야.")

3.
가장이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밥벌이를 하다 보면, 우아하고 고고하게 살아갈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타협도 해야 하고 적당히 때가 묻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올해 상반기 가장 볼만한 TV 드라마 중 하나였던 "내조의 여왕"의 한 장면에서, 신입사원 온달수는 세속적 출세주의자인 한준혁 부장에게 부장님은 왜 자신을 싫어하냐고 묻는다(세상물정에 어두운 무능한 가장 온달수는 한준혁의 첫사랑과 결혼하여 그녀를 고생시키고 있다). 이 때 한준혁은 소리친다. "직장이 왜 전쟁터인지 알아? 가장들이 싸우는 데니까. 그래서 피가 튀는 거야. 당신은 당신 가족을 위해서 피 쏟아가며 싸워본 적 있어?"(제8회) 그러니까 최소한 이 장면에서 한부장이 온달수를 싫어하는 이유는 피 튀기며 싸우는 전쟁터인 직장의 살벌함을 알지못하는, 그런 까닭에 순수하고 낭만적일 수 있는 그의 태도 때문인 것이다. 이 장면은 드라마의 흐름상 그렇게 자연스러운 장면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 순간의 한부장은 김훈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하고 있다. 밥벌이를 하다보면 때가 묻을 수밖에 없으며, 깨끗하고 무능한 가장이 되느니 차라리 때묻고 유능한 가장이 더 낫다는.

하지만 한걸음만 더 나가보자. 현실이 시궁창이어서 먹고 살기 위해 애쓰다 보면 때가 묻지 않을 수 없다 해도, 이 과정에서 묻은 때는 모두 다 같은 것인가? 출세를 위해, 권력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다가 묻은 때와 먹고 살기 위해 애쓰다 어쩔 수 없이 묻은 때와 같은 것인가? 사장이 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김홍식 이사(김창완 扮)와 남편의 취직을 위해 이사 부인에게 줄을 대는 천지애(김남주 扮)는 똑같이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을 뿐인가? 권력을 잡기 위해 사람을 죽이고, 또 다른 사람을 짓밟는 행위와, 생활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지는 현실적 타협은 같은 것인가? 불법선거자금을 받긴 받았지만, 그 규모가 여당 후보에 비해 1/10에 불과하다는 노무현의 발언 - 여기에는 바로 이 비율이 그만큼 깨끗하기 위해 노력한 증거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 은 그야말로 궁색한 변명일 뿐인가?

나아가, 만약 누군가가, 이를테면 권력을 가진 자가 의도적으로 현실을 시궁창으로 만들고, 남에게도, 혹은 자신에게도 의도적으로 때를 묻히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는 때묻은 자가 자신의 오점을 감추기 위해 기획하는 전형적인 전략이다.) 이 때는 그 현실을 바꾸기 위해 싸워야 하는가, 아니면 여전히 그 현실을 인정하며 순응하고 살 것인가? 우파는 이 순간 딜레마에 빠진다. 이 현실을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파는 더 이상 우파일 수 없다. 반대로, 이 현실을 용납한 우파는 건강한 우파라고 할 수 없다. 그는 "수구꼴통"일 뿐이다. 나는 김훈이 결정적으로 모호한 지점이 이 곳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한 지인의 날카로운 통찰에 따르면, 김훈의 서사에는 싸워야 할 적이 불분명하며, 뒤로 물러나 배경으로만 처리된다 (예컨대, <칼의 노래>). 이는 사실상 적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이다. 즉 세상이 잘못 돌아간다 해도, 그것은 원래 그렇고 그런 것이며, 변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적의 추상화는 현실을 똑바로 대면하며 그것에 구체적으로 접근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불건강한 반응이며, 이는 예컨대, 소위 "막장드라마"(예컨대, <아내의 유혹>)에서 복수를 사사화(私事化)하는 것과 동전의 양면이다. 즉 김훈은 세상에 대해 체념하고 있지만, <아내의 유혹>은 복수를 꿈꾼다. 다만 그 복수는 개인을 향한 것일 뿐이다.)

4.
김훈은 또다른 인터뷰에서 윤동주에 대해 인상적인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내게 항해술 책은 문학책보다 더 문학적인 것이지. 죽을 때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그런 것도 문학이지만 그런 건 미성년자들이 하는 것이고.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이게 뭐야. (웃음) 어떻게 인간이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랄 수 있나. 좀 부끄러움도 있고 그런 것이지."(<한국일보>, 20070608)

그에게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라는 것은 사춘기 소년의 감상이지 성숙한 태도는 아니다. 성숙한 태도는 부끄러움이 좀 있더라도, 자신을 건사하고 가족을 먹여살리는 것이다.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살다 보면 좀 부끄러움도 있고 때도 묻을 수밖에 없다. 그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만큼, 그 부끄러움을 부끄러워 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는 너는 깨끗하냐, 며 물귀신처럼 다른 사람을 끌어들일 게 아니라. 내 생각에, 오늘날의 대한민국 우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물귀신 작전이 아니라 염치와 반성인 것같다(좌파에게 필요한 것은 우파의 몫에 대한 인정이겠지만). 그리고 이러한 반성이 그들의 공을 무화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 잘 생각해보면, 깨끗하고 무능한 쪽을 택할 것인가, 좀 더럽지만 유능한 쪽을 택할 것인가라는 물음 자체가 사실은 사이비 이분법이다. (사실 이는 "오늘날의 "좌빨"은 현실 생활에 무능해"라는 우파적 환타지에 기대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 MB가 선거운동 과정에서 가장 많이 한 말 중 하나도 "나는 말은 잘 못하지만, 일은 잘 합니다"였다.) 왜 밥벌이를 (잘)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더럽고 때가 묻어야 하는가? 오히려 선택해야 할 것은 깨끗하면서도 유능한 삶이 아니겠는가. 그 선택이 좌파의 것이든 우파의 것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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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vinove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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