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날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파는, 누가 뭐래도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어왔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을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어왔다고 할 때, 그들이 떠올리는 것은 크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하나는 "빨갱이들"로부터 나라를 지켰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신들의 손으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왔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들의 이러한 자부심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 자부심만큼의 권리가 이들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들어온 것에는 이들의 이만큼의 기여가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적극적으로.)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이러한 그들의 기여가 다른 모든 것들을 합리화할 수는 없다. 국가를 수호한다는 명목 하에 반정부 민주화세력을 빨갱이로 몰아 제거하고, 먹고 사는 문제 이외의 모든 것들을 무가치하게 만드는 것이 용납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들의 자부심을 근거로 나머지 모든 문제를 뭉갤 때, 대한민국의 "보수우파"는 "수구꼴통"이 된다.

김훈은 수구세력과 구분되는, 오늘날의 흔치 않은 "건강한" 보수우파 중 한 사람이다. 특히 그는 산업화세력의 멘탈을 자신의 소설과 에세이들에서, 또 언론을 통한 발언에서 적극적으로 드러내왔다. 나는 그의 많은 발언이 경청할 만하다고 생각하며,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산업화 세력의 권리주장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즉 "합리적으로" 드러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김훈을 읽는 일은 오늘날의 산업화세력을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이러한 "합리적" 발언에 충분히 공감하는 일이 중요하고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오늘날처럼 소위 "좌파"와 "우파"가 서로 정서적으로 대립하고 감정적으로 공격하는 시점에서는 더욱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비판은 충분한 공감 이후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2.
많이 지적되었듯이, 김훈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아버지와의 갈등이다. 김훈의 아버지는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김구의 수발을 들"었고, 해방 후에는 온갖 좌절을 겪으며 술로 분노를 터뜨리는, 하지만 "밥을 온전히 먹을 수 있는 노동"이 아닌 신문기자나 소설가라는 생업을 가진 자였다. (김훈, <바다의 기별>, 24-28.)

로쟈는 이를 "대장부의 길"이라 이름붙인다(로쟈, http://blog.aladdin.co.kr/mramor/841840). 대장부는 먹고 사는 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에게는 오직 자신의 "뜻"을 펼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바다의 기별>에는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가 소개되어 있다. 중1짜리 김훈이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재밌게 읽고, 그에 빗대어 술을 마시고 있는 아버지에게 말한다. "아버지는 꼭 허클베리네 아버지 같아요."("허클베리의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에다 돈은 안 벌어오고 집에도 안 들어오는 사내였다") 이 때 술 취한 그의 아버지는 허공을 올려다보다 한참 뒤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광야를 달리는 말이 마구간을 돌아볼 수 있겠느냐?" 김훈의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김훈, <바다의 기별>, 27.))

하지만 "대장부의 ‘명분’은 우리를 한번도 밥 먹여주지 않았다."(로쟈, 같은 곳)  우리를 밥먹여준 것은 언제나 가장의 밥벌이였다. 김훈이 선택한 것은 "가장의 길"이다. 가장이 할 일은 가족을 먹여 살리는 일이다.

(김훈이 겪은 아버지와의 불화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그의 아버지는 아주 엄하고 혹독한 분이었는데, 자주 ‘세상을 저버린 자’처럼 세상에 대한 분노와 허무를 무지막지한 술로 달랬다. 그리고 그런 날 새벽이면, 소년 김훈은 해장국 심부름을 가야 했다고. 어느 추운 겨울날 새벽에도 그는 해장국 심부름을 다녀오다가 그만 뚝배기를 바지와 길바닥에 다 엎지르고 말았다. 새벽녘 길바닥에서 그는 목놓아 엉엉 울면서 절대로 아버지와 같은 삶은 살지 않으리라고 다짐한다."(로쟈, 같은 곳, 김훈, 박래부의 <문학기행> 서문에 나온 내용을 로쟈가 요약한 것임.))

바로 이런 점에서 김훈은 오늘날의 우파의 환타지를 대변한다. "도덕적 명분보다 중요한 것은 먹고 사는 일이다!" 지난 시기 <허준>과 <하얀 거탑>이 민주화세력(이른바 "좌빨")의 환타지를 대변했다면, 그리고 이 환타지의 정치적 결실이 노풍(盧風)이었다고 한다면, 그에 대한 산업화세력의 응답은 김훈이었다.

(김훈은 후배 기자들과의 어느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의 우익, 대한민국의 산업화세력으로서의 자부심을 공공연히 드러낸다.

"386이 리더가 됐잖아. 근데 걔들은 사회의 물적 토대를 건설한 경험이 전혀 없는 아해들이야. 그래서 도덕적인 거지. 인간의 선의를 모아 가지고 현실을 개선할 수 있다는 낭만주의, 아름답지. 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거든. 엄청난 세금을 내고, 반드시 아들을 군대 보내는 것은 우익이거든." (리얼리??)

“우익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세상을 책임지는 거야. 좌익과 진보는 세상을 맡을 수 없어. 물적토대가 없으니까. 비참하게도 우리 시대의 물적토대의 역사는 우익이 만든 거야. 좌익이 반항하더라도 우익 토대 아래서 반항한 거라고. 그리고 한국사회의 물적 토대를 건설한 사람은 박정희 대통령이야.")

3.
가장이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밥벌이를 하다 보면, 우아하고 고고하게 살아갈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타협도 해야 하고 적당히 때가 묻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올해 상반기 가장 볼만한 TV 드라마 중 하나였던 "내조의 여왕"의 한 장면에서, 신입사원 온달수는 세속적 출세주의자인 한준혁 부장에게 부장님은 왜 자신을 싫어하냐고 묻는다(세상물정에 어두운 무능한 가장 온달수는 한준혁의 첫사랑과 결혼하여 그녀를 고생시키고 있다). 이 때 한준혁은 소리친다. "직장이 왜 전쟁터인지 알아? 가장들이 싸우는 데니까. 그래서 피가 튀는 거야. 당신은 당신 가족을 위해서 피 쏟아가며 싸워본 적 있어?"(제8회) 그러니까 최소한 이 장면에서 한부장이 온달수를 싫어하는 이유는 피 튀기며 싸우는 전쟁터인 직장의 살벌함을 알지못하는, 그런 까닭에 순수하고 낭만적일 수 있는 그의 태도 때문인 것이다. 이 장면은 드라마의 흐름상 그렇게 자연스러운 장면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 순간의 한부장은 김훈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하고 있다. 밥벌이를 하다보면 때가 묻을 수밖에 없으며, 깨끗하고 무능한 가장이 되느니 차라리 때묻고 유능한 가장이 더 낫다는.

하지만 한걸음만 더 나가보자. 현실이 시궁창이어서 먹고 살기 위해 애쓰다 보면 때가 묻지 않을 수 없다 해도, 이 과정에서 묻은 때는 모두 다 같은 것인가? 출세를 위해, 권력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다가 묻은 때와 먹고 살기 위해 애쓰다 어쩔 수 없이 묻은 때와 같은 것인가? 사장이 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김홍식 이사(김창완 扮)와 남편의 취직을 위해 이사 부인에게 줄을 대는 천지애(김남주 扮)는 똑같이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을 뿐인가? 권력을 잡기 위해 사람을 죽이고, 또 다른 사람을 짓밟는 행위와, 생활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지는 현실적 타협은 같은 것인가? 불법선거자금을 받긴 받았지만, 그 규모가 여당 후보에 비해 1/10에 불과하다는 노무현의 발언 - 여기에는 바로 이 비율이 그만큼 깨끗하기 위해 노력한 증거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 은 그야말로 궁색한 변명일 뿐인가?

나아가, 만약 누군가가, 이를테면 권력을 가진 자가 의도적으로 현실을 시궁창으로 만들고, 남에게도, 혹은 자신에게도 의도적으로 때를 묻히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는 때묻은 자가 자신의 오점을 감추기 위해 기획하는 전형적인 전략이다.) 이 때는 그 현실을 바꾸기 위해 싸워야 하는가, 아니면 여전히 그 현실을 인정하며 순응하고 살 것인가? 우파는 이 순간 딜레마에 빠진다. 이 현실을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파는 더 이상 우파일 수 없다. 반대로, 이 현실을 용납한 우파는 건강한 우파라고 할 수 없다. 그는 "수구꼴통"일 뿐이다. 나는 김훈이 결정적으로 모호한 지점이 이 곳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한 지인의 날카로운 통찰에 따르면, 김훈의 서사에는 싸워야 할 적이 불분명하며, 뒤로 물러나 배경으로만 처리된다 (예컨대, <칼의 노래>). 이는 사실상 적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이다. 즉 세상이 잘못 돌아간다 해도, 그것은 원래 그렇고 그런 것이며, 변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적의 추상화는 현실을 똑바로 대면하며 그것에 구체적으로 접근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불건강한 반응이며, 이는 예컨대, 소위 "막장드라마"(예컨대, <아내의 유혹>)에서 복수를 사사화(私事化)하는 것과 동전의 양면이다. 즉 김훈은 세상에 대해 체념하고 있지만, <아내의 유혹>은 복수를 꿈꾼다. 다만 그 복수는 개인을 향한 것일 뿐이다.)

4.
김훈은 또다른 인터뷰에서 윤동주에 대해 인상적인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내게 항해술 책은 문학책보다 더 문학적인 것이지. 죽을 때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그런 것도 문학이지만 그런 건 미성년자들이 하는 것이고.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이게 뭐야. (웃음) 어떻게 인간이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랄 수 있나. 좀 부끄러움도 있고 그런 것이지."(<한국일보>, 20070608)

그에게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라는 것은 사춘기 소년의 감상이지 성숙한 태도는 아니다. 성숙한 태도는 부끄러움이 좀 있더라도, 자신을 건사하고 가족을 먹여살리는 것이다.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살다 보면 좀 부끄러움도 있고 때도 묻을 수밖에 없다. 그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만큼, 그 부끄러움을 부끄러워 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는 너는 깨끗하냐, 며 물귀신처럼 다른 사람을 끌어들일 게 아니라. 내 생각에, 오늘날의 대한민국 우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물귀신 작전이 아니라 염치와 반성인 것같다(좌파에게 필요한 것은 우파의 몫에 대한 인정이겠지만). 그리고 이러한 반성이 그들의 공을 무화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 잘 생각해보면, 깨끗하고 무능한 쪽을 택할 것인가, 좀 더럽지만 유능한 쪽을 택할 것인가라는 물음 자체가 사실은 사이비 이분법이다. (사실 이는 "오늘날의 "좌빨"은 현실 생활에 무능해"라는 우파적 환타지에 기대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 MB가 선거운동 과정에서 가장 많이 한 말 중 하나도 "나는 말은 잘 못하지만, 일은 잘 합니다"였다.) 왜 밥벌이를 (잘)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더럽고 때가 묻어야 하는가? 오히려 선택해야 할 것은 깨끗하면서도 유능한 삶이 아니겠는가. 그 선택이 좌파의 것이든 우파의 것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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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vinove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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