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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12 미디어법 관련 쟁점 총정리*^^*(2) by vinoveri 2

(1편에서 이어집니다.)

나아가, 아무리 국민들이 뭐라 그래도 그냥 밀어붙이면 어떻게 할 거냐,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냐, 뭐 이런 얘기도 나올 수 있습니다. 어차피 칼자루를 쥔 쪽은 따로 있는게 아니냐는 말이지요. 맞습니다. 그럼, 뭐 할 수 없지요. 어차피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인데, 그가 임기 동안에는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민주주의란 그런 것이죠. 그러니, 선거가 중요한 겁니다.ㅎㅎ

그런데 국민들이 말을 안 듣고 다들 나서서 저항을 하고 정권의 적이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일방적 정책이 이어지면, 납득하지 못한 국민들이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우리 사회는 점점 갈등이 심화될 것이구요. 이로써 생기는 정치적 부담은 모두 정부에게 돌아가게 되지요.

정치적 부담이 커진다는 것은 정치적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아무도 열심히 일하지 않는데 앞에서만 끌고 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맘이 안 맞는 사람들하고 함께 일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법입니다.) 공무원에게 보내는 MB의 음성/문자메시지를 90% 이상의 공무원이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지워버린다고 하고, 또 내년부터 서머타임한다고 하니까 60% 이상의 국민이 일단 반대부터 하고 봅니다. 정부가 무슨 일을 해도 국민들은 일단 반감부터 울컥, 생기는 상황인 거죠. 

(지금의 이명박 정권이 취하고 있는 이러한 정치적 태도를 정치학에서는 흔히 "위임(委任)주의"라고 부릅니다. 국민이 날 뽑은 것은 나에게 전권을 위임한 것이다, 임기 중에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이며, 모든 평가는 임기 후에 받겠다, 라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정치적 반대세력과 협의하고 타협하는 일에 무관심합니다. (위임주의의 대표적 사례는 영국의 마가렛 대처입니다.) 반대로 다수당이 소수파와의 대화와 타협을 통해 정책을 결정해 나가는 태도를 "의회주의"라고 부릅니다. 의회주의에 비해 위임주의가 정치적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아담 쉐보르스키의 진단입니다. 이 부분은 민주당 국회의원 김부겸의 글에서 빌려와 문맥에 맞게 고쳐 썼습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28&articleId=13680)

이건 정부 쪽에서도 상당한 정치적 부담이고 정치적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데 이걸 당사자들이 위기라고 느끼고 있느냐?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정부 쪽에서 이걸 위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소수인 것 같고, 그냥 잘 돌아가고 있다, 진작 이런 식으로 할 걸 그랬어,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은 다수인 것 같습니다. 그게 더 큰 문제이고, 그래서 국민들은 더 큰 절망을 느끼는 것이지만, 암튼 정부 쪽에서도 이건 힘든 사태입니다. 사람 하는 일이 억지로 해서 되는 일이 없는 법이지요. 무리하게 일을 진행하면, 반드시 뒷탈이 나기 마련이구요. (그래서 '중도실용'도 내세우고, '서민'들과의 스킨쉽도 늘이는 것이지만, 이걸로 되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왔습니다. 이 정부에 기회가 있었다면, 그건 바로 작년 촛불 때였죠.) 

끝으로, 미디어법이 헌재에 통과되어 실행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해 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조중동이 TV방송을 하게 되면, 국민들이 세뇌라도 되는 양 호들갑을 떠는 사람도 있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는 우리 국민들의 정치의식, 시민의식이 만만치 않다고 보기 때문이지요. 물론 조중동 TV가 방송을 시작하면, 그리고 보수적인 시각에서 일방적으로 보도를 하게 되면, 지금보다 정보노출에 있어서 편향된 시각들이 전달될 가능성은 커지겠죠. 하지만 그만큼 매체에 대한 신뢰도는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공정한 보도를 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이 상황은 유신과 5공 때를 생각해 보시면, 잘 이해가 될 수 있습니다. 유신과 5공 때는 모든 언론이 검열을 받아야 하는 관변언론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매체는 정권의 시각만을 일방적으로 대변해야 했죠. 하지만 이로써 매체의 신뢰도는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국민들은 언론의 말을 거꾸로 이해했습니다. 언론에서 오늘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하면, 국민들은 오늘 무슨 일이 있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신문방송 모든 매체의 신뢰도를 합한 것이 '카더라방송'의 신뢰도를 못 당하던 시절이었죠. 만약에, MBC와 YTN이 조선일보와 똑같은 목소리를 내고,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이 정부에서 하는 일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천재지변에 준하는 세상이 온다면, 그런 일이 만약에라도 일어난다면, 그 때는 그럼 모든 국민들이 동일한 생각을 하고 말 잘 듣는 학생들처럼 정부 방침을 따라갈까요? 전 그럴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때는 다시 사람들이 찌라시를 뿌리고, 유언비어를 더 신뢰하는 세상이 되겠죠. 물론 이제는 그 찌라시가 트위터나 기타등등을 통해서 전달되겠지요. 

(이와 관련된 상반된 두 시각을 한번 비교해 보시죠. 먼저 홍세화의 "파시즘 경고와 언론법"입니다. 그는 언론장악을 통해 국민들이 세뇌가 될 수도 있음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SERIES/114/365425.html 그리고 이와 상반되는 시각의 박태견칼럼입니다.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code=NAC&sch_key=&sch_word=&seq=52772 그는 조중동의 방송진출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지요. 논의의 초점이 국내 언론환경과 관련되어 있지는 않지만, 다음의 인터뷰에서 정세현이 보여주는 관점 역시 비슷합니다. 그가 하고싶은 말은 제목이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디어법으로 정보 질서 장악…그게 되겠습니까?"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0803233016&section=05 저는 후자의 입장을 지지합니다.) 

민심을 살피는 정책을 통해 국민들의 마음을 얻으려 하지 않고, 언론환경을 유리하게 만들고 정보를 통제해서 국민들을 끌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미디어법이 통과되면, 그래서 조중동방송이 생기면 국민들이 세뇌라도 되는 양 말하는 사람들이나 우리 국민들의 의식수준을 믿지 못하기는 매 일반입니다. 저는 이런 의견에 반대합니다. 혹세무민을 하기에는 우리 국민들이 그동안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며 배워온 것이 만만치 않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조중동의 신뢰도 하락이 이에 대한 구체적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최근의 <시사인> 여론조사를 보면, 자랑스럽게도 가장 불신하는 언론 1,2,3위를 조중동이 나란히 차지했습니다. 그들의 신뢰도는 떨어졌다 해도, 정치적 영향력은 여전하지 않냐고 말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는데, 그들의 영향력 역시 예전같지 않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최근 미디어악법투쟁에 올인하고 있는 민주당은 조선일보, 동아일보와 맞짱을 뜨고 있습니다. 왜곡보도가 도를 넘어섰다는 것이죠. 근데 이게 저한테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합니다. 노무현이 대통령후보로 뜨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조선일보와 맞짱을 떴다는 것 아닙니까? (당시 대통령이었던 김대중 역시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죠?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 것은 조선일보와 싸웠기 때문이야.. 이 자리를 빌려, 김대중 선생님의 쾌유를 빕니다.ㅠㅠ) 그때 정치권에서는 모두들 노무현을 비웃었습니다. 쟤가 뭘 몰라서 저러지, 저러다 크게 다치지ㅉㅉ.. 하는 게 당시의 정서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민주당 전체가 조선일보와 싸울 수 있는 세상이 된 겁니다.

이러한 영향력 하락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 조중동입니다. 이렇게 무리를 해서라도 미디어법을 개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바로 그 증거죠. 종이신문은 그 분야 전체가 사양산업이고, 정치적 영향력은 예전같지 않고.. 그래서 어떻게든 살아남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상황이죠.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잘 안 될 겁니다. 조선일보 사장도 그런 말을 했다지요? 방송에 진출하면, 빨리 망하고, 방송에 진출하지 않으면, 서서히 망한다고. 빨리 망할지 서서히 망할지는 모르지만, 암튼 잘 안 될 겁니다. 

미디어법 날치기 이후, 정부여당은 YTN 사장을 잘라 돌발영상 못하게 하고, MBC 방문진 이사진을 뉴라이트로 재구성했습니다. 이를 통해 유리한 정보만을 걸러서 내보내고 홍보를 강화하면 여론도 좀 나아지리라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쓸데없는 일에 목숨걸고 있습니다. 언론사 사장들을 다 갈아치워도 이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그런 식으로 해서 여론을 장악하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문화적 지체를 겪고 있는 올드보이들이나 이걸 모를 뿐이지요. 근본적으로는 민심을 거스르면서 잘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기도 하구요. 

포카판에서 상대의 패를 다 알고 있으면, 내 패가 별 게 없어도 별로 겁나지 않습니다. (근데, 지금은 상대의 패도 별 게 없지요?ㅋ) 그럼 나만 잘 하면 됩니다. MBC의 엄기영 사장이 최근 리스크가 드러나면 그건 이미 리스크가 아니라는 멋진 말을 했습니다. 이제부터 리스크를 잘 관리하면 된다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이 싸움은 우리만 잘 하면 이길 수 있는 싸움입니다. 짜증나는 일들이 많은데, 너무 짜증내지 마시고 느긋하게 같이 싸우면 이길 수 있습니다. (최근에 김대중 선생님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잘못하는 일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는 명확한 의사표현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나아가, 인터넷에 글도 쓰고, 담벼락에 낙서라도 해야 된다고 하면서 일상적 실천에 대해 강조하셨습니다. 작은 불꽃 하나가 큰 불을 일으키는 법이지요.)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vinove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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