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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18 여름날의 바이올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4


3년만에 비가 많이 내린  여름이라고 하더군요.  두어 달 걸쳐있던 장마가 지나 가고 8월도 이제 중심이 뒤로 기울면서 한 해의 여름 정산을 서두르는 심정은 아마  더위에 지쳤기 때문일 겁니다.  왜 이리 세월은 속절없냐고 탄식하면서도 찰나에 불과한 한 계절 나기가 고달프다고 세월을 채근하다니... 인간은 어쩔 수 없는가 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의 모순과 허물을 두고 서로를  인간적이라면서  인간적인 화기로 서로를 인정하나 봅니다 ^^(물론 제 경웁니다)

자주 산을 갑니다. 
산행하기 좋은 봄가을엔 인파로 지장받고 인적이 드문 한여름 한겨울 (한봄 한가을은 없지요~)엔 혼자만의 산속,  산길,  산아래 풍경, 그리고 걷고 또 걷는 행위의 반복성에 대한 성찰은 어렵지 않을지 모르나, 너무 더워 혹은 살을 에이는 삭풍에 예기치 않은 무념무상의 경지에 절로 이르게 되지요.^^ 어느 쪽도 아쉽지만 또 어느 쪽도 나름 얻는게 없다고 할 수는 없네요.
정말 2009년 정점의 한여름을 관통하는 즈음입니다.  작열하는 뙤약볕 아래 무슨 수도승이라도 된 양 산을 올라갔지요.  달개비꽃이 산재해 있고 부용, 달맞이꽃,  능소화, 옥잠화, 배롱나무꽃 등이 찡그린 미간사이로 펼쳐졌습니다. 얼마 전만 해도 그 자리에 찔레꽃이나 붓꽃, 패랭이꽃들이 있었는데...   그런데 그 사이에 코스모스랑 구절초와 같은 가을꽃들도 기세가 등등합니다.  이건 뭐 계절꽃이 따로 없구만.. 지네들  피고 싶을 때 아무때나 나오고.. 그런 생각을 하며 돌아오는데 아파트앞 커다란 나무에 목련꽃이 피어있지 않겠어요?!  그야말로 요즘 누구 말로 대박...아무리 알아서들 하겠지만  8월에 목련이라.. 심한 거 아닌가요.  그러면서 연이어 드는 생각이 얘들도 먹고 살려니 힘드나 보다..  물론 나의 사사로운 감정이나 상황이 투사된 것이겠지만 사람의 살이나 식물들의 살이가 혼돈스러운 건 매 한가진가 봅니다. 느닷없이 옛날 좋아했던 노래 한 귀절을  읊조렸습니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
                                                            (노래 전문^^)

암튼 정점이란건 올라간 도착점인 동시에  내려오는 출발점이란 면에서 여름과 닮은 것 같습니다.  더위에 지쳐 세상 돌아가는 꼴도 우거진 녹음과 만개한 꽃들도 찬찬히 들여다 볼 여력이 딸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곧추 내리쬐는 빛과 푸른 하늘이 없다면 어디서 살아갈 탄력을 받을까요.  아름답고 잘나고 빛나는 바깥세상을 보면서 사람사는 세상도 엇비슷하게 굴러가면 좋겠다.. 잠깐 드는 생각 흘러 보내고 화사하고 곱고 당당한 원색들의 향연에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선율을 떠올렸습니다

멘델스존은 낭만주의가 왕성하던 무렵 부유한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나 부족함없는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자랍니다. 음악사에 족적을 남긴 훌륭한 음악가들이 불운했거나 병마에 시달렸거나 힘든 삶과 짧은 생애를 살았다면 멘델스존은  드물게 유복한 환경에서 맘껏 자신의 기량과 타고난 재능을 펼쳤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러한 환경과 생애로 그의 음악엔 슬프거나 내면의 고독과 같은 애조가 없다고도 하지만 사람은 저마다  다른거니까요. 널리 알려진 짧은 소품 '노래의 날개위에' 만큼 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나기도 정말 드물지요. 아름다움은 곧 슬픔과 동의어이기도 하지 않나요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E 단조 Op 64 
낭만주의곡들중 가장 사랑받는 바이올린 협주곡 중의 하나이며 베토벤, 차이콥스키,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더불어 최고로 찬사 받는 곡이지요.  빠른 1악장, 느린 2악장 ,빠른 3악장의 전형적인 구성이지만 악장과 악장 사이가 음악적 스타일로 구분되어지지, 딱히 명시적으로 단락을 짓지는 않습니다.  현란한 기교로 분명하게 1악장의 대미를 끝내지만 바이올린 솔로가 먼저 끝나고 관현악 반주의 끝남과 동시에 바순의 저음이, 여전히 음악은 이어지고 있다는 듯 흐르고 있지요.  빠르고 느린 두 악장,  e단조와 c장조의 만남 사이에 적막하고도 교교한 달빛이 흐르는 다리가 놓여진 듯 합니다.   안단테의 2악장이 끝나고 다시 알레그로 비바체의 e장조 3악장이 시작되기 전에도  1악장과 같은 e단조의 -약간 빠른 템포의- 짧은 동기가  맛뵈기 하듯 나온 뒤, 저 유려하고 화려하면서도 우아함과 격조를 잃지 않는, 그리고도 쾌활하며 사랑스러운 3악장이 일사천리로 전개됩니다.  작곡가의 고양된 감정과  자유분방한 사상이 낭만주의의 구도 아래 잘 표현됐다고 봅니다.  3악장 맨 마지막 끝나기 바로 직전의 '솔솔 레레  미미도도~~~' 의 빠른 반복이 똑같이 6회  반복되면서 고조된 분위기가 아주 높은 미로 도약하는 바로 그 대목이 최고의 클라이막스로 느껴지는데 하이페츠의  소리가 결코 넘을 수 없는 슬픈 운명에의 체념이라면, 오이스트라흐는 비록 안 될지라도 인간의 의지나  따뜻한 사랑으로  신념을 관철한  그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  타고난 천재성이 자신의 숙명인 양  처연한 차가움의 완벽한 기교로 하이페츠가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공표했다면, 오이스트라흐는 거기 다가갈수 없을지언정  온기어린  결연함으로 멘델스존을 표현했다고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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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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