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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30 볕도 안 드는 뿌연 개천에서 살아가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1
개천에서 용나지 않는 시대에 고함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정대진 (책마루,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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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초안이며 보다 자세한 내용은 위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글 싣는 순서>

막힌 물길

중학교 3학년, 이재민의 경우/ 꿈은 꿈일 뿐이다 / 함께 꾸는 꿈도 현실이 되지 않는다 / 계속 꿈만 꾸어야 하는가 / 다른 꿈을 꿀 수는 없을까 / 다른 꿈도 못 꿀 수 있다 / 볕도 안 드는 뿌연 개천에서 살아가기 / 통계로 보는 볕 안 드는 개천 바닥 / 오늘날의 개천은 강과 바다로 닿지 않는다 / 강과 바다에 사는 아이들은 행복할까

개천에서도 용은 났으나

개천에서도 용은 났으나 / 다이너마이트에 불장난하는 대한민국? / 억울하면 출세해라, 왕조의 몰락과 식민지배/ 억울하면 출세해라, 정부수립과 고착된 기회주의 / 억울하면 출세해라, 뿌리 깊은 기득권과 막힌 공로(公路)/ 개천에서 용 되려면 무조건 “중앙으로!” / 대학입시는 계급투쟁 / 가족 이기주의 / 늘어나는 사회비용 / 인삼이나 산삼보다 귀한 고3 / 무한발전 사교육 / 병목현상 / 패자부활전도 없다 / 왜 이렇게까지 / 개천에서 난 용 한 두 마리로는 안 된다

물길을 트자

한 곳으로만 흐르는 물길, 막힐 수밖에 없다 / 한 곳으로 갈 거면 물길이라도 다양하게 / 개인의 의지보다는 시스템으로 / 시스템의 가능성 하나, 국가 엘리트 육성 프로그램 / 가능성이 여는 세상①- 개천에서 난 용,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만들다 / 시스템의 가능성 둘, 교육발전종합계획 / 가능성이 여는 세상 ② - 두렵지 않은 ‘제2의 인생’, 인생을 두 배로 사는 세상 / 새로운 사회를 위한 가능성, 만16세 투표권 / 가능성이 여는 세상 ③ - ‘엘리트 농사꾼’, 김의원


다른 꿈을 꿀 수는 없을까

그래서 재민이와 같은 학생들은 다른 방식으로 꿈을 꿀 수도 있다. 국내에서 민족사관고등학교나 외국어고와 같은 특목고에 진학해서 외국 대학 학부로 직접 유학을 떠날 준비를 해볼 수도 있다.

1996년에 개교한 민족사립고는 1999년부터 국제반을 개설해 외국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학생들을 지도했다. 그 결과 2007년에는 83명, 2008년도에는 79명의 학생들이 코넬, 프린스턴, MIT, 하버드, 예일, 스탠포드, 듀크 대학 등으로 진학했다. 전교생 수가 150여명임을 감안하면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외국 대학 특히 미국대학으로 직접 진학을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기유학을 가지 못할 형편의 뛰어난 학생이라면 민사고 등에 진학해 진로를 개척해볼 것도 고려해볼만 하다.

그러나 중3이 되어서야 조기유학을 알게 되고 그 꿈을 꾸게 된 이재민과 같은 학생들이 특목고나 민사고를 가기 위해 준비하기에는 시간이 역부족이다.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재수를 해야 되는 판국이다.

혹시 중3 이전에 특목고나 민사고 준비를 시작한다고 해도 잘 짜여진 사교육 시스템의 지원 없이는 그 관문을 뚫기란 쉽지 않다. 매해 민사고의 전형요강이 발표되면 전국 내로라하는 학생들과 학부모의 눈과 귀가 집중되고 그 경쟁률 또한 만만치 않다.

실제로 지은이는 대학교와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 학비와 용돈을 벌기 위해 논술강사 생활을 했는데 대치동이나 목동의 사교육 환경이 발달한 곳에서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특목고를 염두에 두고 아이들을 진로 지도한다.

양재동의 어느 학원 원장은 중학교에 올라가는 학생들이 민사고나 외고 등에 지원할 때 보다 유리한 조건을 가질 수 있도록 학생회장 선거에까지 입후보시켜 당선시키는 등 전방위 컨설팅과 지도를 하기도 했다. 이 때 논술선생이었던 나는 어린 학생의 선거유세 연설문을 작성해주었고 학원 강의실에서 비디오 캠코더로 그 학생의 연설모습을 녹화해가며 발음과 연설자세 등을 지도하기도 했다. 이외 특목고 관문을 뚫기 위해서는 각종 경시대회에서 입상도 해야하고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고자 하는 특목고의 최근 입시경향에 대비하여 아주 밀착된 입시 컨설턴트 서비스를 받아야만 한다.

민사고나 특목고에 가려면 수년에 걸쳐 이렇게 잘 짜여진 사교육 시스템의 지원을 받아야 안심을 하고 한번 해볼 만한 게임이라고 생각하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특목고에 가야 이른바 SKY로 불리는 한국의 명문대학에 진학할 확률이 높은 게 현실이다.
 
2009학년도 대학입시만 보더라도 서울대의 외고생 합격자 비율은 8.41%였다. 고려대와 연세대는 각각 18.61%, 19.24%로 신입생 5명 중 1명은 외고생 출신으로 뽑았다. 우리 주위의 고교 5개 중 한 개가 외고라면 이 비율을 문제삼을 게 없다. 하지만 어디 그런가?

특목고 열풍에 더해 최근에는 국제중학교 열풍도 불고 있다. 그렇지만 국제중학교에서도 재민이와 같은 학생들이 초등학교 때 미리 알고 준비를 하더라도 그 문턱을 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2008년에 개교한 서울 영훈국제중학교는 2010학년도 입시에서 아예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을 없앨 방침을 밝힌 적이 있다.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의 경우 차상위 계층이나 한부모 가정, 다문화 가정 출신 등을 우선 선발하는 방식이라 이재민과 같은 학생들이 직접 혜택을 받지는 못하겠지만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 등을 두고 입시를 치르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의 학생선발경향은 확연히 다를 것이다.

고소득층을 보다 배려하는 방식으로 입시경향이 나아간다면 이재민과 같이 절대 빈곤층은 아니지만 고속득층에도 속하지 않는 가정 출신의 학생들은 어정쩡하게 여기저기에도 끼지 못하는 형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2009년 4월 교육열이 높은 서울 강남과 목동・중계동, 경기 과천・분당・평촌지역 초등학생 686명과 중학교 3학년생 694명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이 지역 초등학생의 63.6%, 중학생의 53.2%가 특목고 진학을 희망했다. 그리고 이 희망자 중 91.9%는 사교육을 받고 있으며 사교육비로 월평균 71만원을 지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재민과 같은 가정형편에서 조기유학을 보내지 못하더라도 특목고 진학을 위해 사교육을 받게 하려면 만만치 않은 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

재민이와 같은 학생들은 그냥 일반 중학교에서 열심히 기초를 닦고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서 착실히 또 다른 기회를 노리는 게 가장 안전하고 현실적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풀다보니 재민이와 같은 학생들이 대단히 불우하고 갈 데 없는 것처럼 되어 버렸지만 재민이 정도라면 공부도 잘하고 학급회장도 하고 있으니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서도 본인만 성실히 하면 한국에서 명문대에 갈 수 있을 것이다.

인생 살아봐야 안다고 재민이 같은 아이들이 지금은 당장 조기유학을 못가고 더 좋은 조건에서 실력을 키워나갈 수 없다 하더라도 여차저차 언젠가는 용이 되어 하늘로 날아오를 수도 있다.

재민이와 같은 아이들이 다 상처받은 이무기로 인생을 끝낼 것이라고 쉽게 단정지을 수는 없다. 다만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우리 사회에서 재민이와 같은 아이들이 예전에 비해 상처받은 이무기로 인생을 끝내버릴 확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화 시대라는 삶의 조건이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인의 삶에 덧입혀지면서 예전처럼 국내에서 공부 잘하고 명문대 나오는 것만으로 용이 되어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는 기반을 전부 갖출 수는 없게 되었다. 외국 유학을 갔다온 사람만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부모가 부자이고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보다 좋은 사회적 인맥을 가지고 있다면 성공할 확률이 확실히 높아진다는 것을 대한민국에서 이제 모르는 사람은 없다.

‘성공’의 의미를 새롭게 디자인한다면 모를까 아직 한국사회에서는 ‘성공’의 의미와 내용이 획일화되어 있다. 억대 연봉을 받거나, 유망하고 안정된 직업을 갖고 생활하지 않으면 출세했다, 성공했다 쉽게 인정하지 않는 게 우리 사회의 분위기다. 물론 겉으로는 각자 하고자 하는 일을 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게 의미 있다고들 이야기한다. 하지만 제 자식이 삼각김밥에 라면 먹을 돈 정도만 벌면서 홍대앞 클럽에서 기타나 드럼을 연주하며 자기의 음악세계를 가다듬고 있는 모습을 마음 편히 봐줄 부모는 별로 없을 것이다.

남들과는 다른 꿈을 꾸며 다른 방식으로 사는 모습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 게 지금 우리 사회의 분위기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꿈을 꾸는 것 자체도 거의 불가능할뿐더러 설사 같은 꿈을 꾸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이를 이루기 위해 나아가는 통로도 막혀버리게 된다. 바로 재민이와 같은 부류의 학생들은 전폭적인 사교육과 기타 교육정보의 컨설팅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고 민사고나 특목고 등 국내에서도 일부 선택받은 학생들이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밟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더 우울해지는 건 그나마 재민이 뷰류의 학생들은 지금부터 다루려는 아이들에 비하면 훨씬 행복한 아이들이라는 사실이다. 재민이와 같은 학생들은 본인이 본인 조건과 환경에 비해 큰 꿈을 꾸고 있기에 고통을 받는 것이다. 십대 시절 한번 꾼 꿈을 포기하는 일이 힘들기는 할 것이다. 그렇지만 재민이는 일단 우등생이고 부모님들도 힘닿는 한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실 것이므로 국내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 안의 명문대를 가고 그 이후 또 다른 기회를 누려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한부모 가정에 살거나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영어 사전 한 권 없이 공부를 하는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학교에서 돌아와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집에서 손수 밥을 차려먹어야 하고 엄마와 아빠를 보는 일이 생활의 특별한 일과가 되어있는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누구도 공부하라고 얘기하고 강요하지 않기에 자유로워 보이지만 다른 많은 친구들이 받는 기본적인 관심조자 못 받는 일이 자신의 미래에 얼마나 큰 악영향을 주는지조차 알지도 못하면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볕도 안 드는 뿌연 개천에서 살아가기

보건복지가족부와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내놓은 ‘2009 한국 아동・청소년 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에 볕 안 드는 뿌연 개천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어린 이무기들이 다수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이 자료는 2007년말 기준 전국 6천923가구를 소득계층과 지역별로 나누어 표본추출해 조사한 결과이다. 이에 따르면 한국 어린이들의 절대 빈곤율은 7.8%이다. 최저생계비 이하의 수입을 올리는 가정에 속한 아이들의 비율이 이 정도이고 이들 가정은 한달 평균 약92만원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이보다 한 단계 나은 가정을 차상위 계층이라고 하는데 이들 가정은 한달 평균 144만원의 수입을 올린다. 이런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비중은 4.2%였다.

절대 빈곤층과 차상위 계층의 아이들을 합치면 전체 어린이의 12%에 달한다. 즉 10명당 1명 정도의 아이들은 자신들의 장래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볕도 안 드는 시계제로의 뿌연 개천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리며 심지어 자신이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며 살아가는 경우도 많다.

내 큰집은 부산 연산동에 있는데 그 집에 사는 중학교 1학년 조카애를 보며 나는 볕도 안 드는 개천바닥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 아이는 엄마 없이 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부산 연산동 달동네에 살고 있다.

내가 어린 시절 부산 연산동 달동네 큰집에 종종 놀러갔을 때는 공기 좋고 살기 좋은 곳이라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면 아침 산안개가 건너편 산허리를 두르고 있었고 창문을 열자마자 쏟아져 들어오던 청명한 공기는 서울 촌놈이 맡을 수 없는 맑은 냄새를 가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 그 느낌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내가 그 당시 서울의 지하실 셋방에서 살던 아이였기 때문이었을 게다.

나야말로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볕도 들지 않는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개천 바닥의 미꾸라지였다. 햇볕이 들어오는 창문이 있는 방에서 아침 햇살에 눈을 뜨는 게 소원이었던 아이였다. 그래서 해와 가까운 산동네에 있는 부산 큰집이 좋았을 정도였다. 그런 어린 시절을 보내서였는지 몰라도 2008년 겨울 해군통역장교로 군복무를 하다가 외국 항해를 준비하기 위해 들린 부산에서 오랜만에 큰집을 찾아갔다가 다소 우울한 경험을 했다. 달동네 큰집과 그 집에 살던 조카애가 내가 고민하던 문제의 살아있는 현장이었다.

몇 년 만에 만났던 내 조카애는 중학교에 들어가 목소리도 걸걸해지기 시작했다. 난 이것저것 조카애의 생활에 대해 물었다.

“한 반에 몇 명이니?”

“삼십 오 명이요”

“학교 끝나면 주로 뭐해?”

“학원 갔다가 친구네 빈집 있으면 가서 놀아요”

“학원에서는 뭐 배우니?”

“국영수요. 시험 때는 전 과목 다 공부하고요”

“무슨 과목이 제일 좋아?”

“......”

“중학교 올라갔는데 영어 사전은 있니?”

“아니요”

“......”

처음에는 내가 주로 묻는 걸로 대화를 시작했고 아이가 별로 할 대답이 없어 이야기는 툭툭 끊어졌었는데 막판에는 내가 할 말이 없어 대화를 접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학원 승합차를 운전하는 일을 하고 밤에는 대리운전 일도 한다. 돌아가신 아이의 할아버지는 환경미화원 트럭을 운전하는 일을 했다. 대를 이어 부산에서 운전일을 하는 집안의 아이로 태어난 내 조카애는 밤낮으로 일하는 아빠를 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나이드신 할머니 그러니까 나의 큰어머니는 아픈 다리 때문에 경사가 가파른 산동네 길을 다니시는 것도 불편해보였다. 아이의 밥이나 챙겨주는 일만으로도 족해 보였다.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걸었던 나는 내 조카애와 함께 누구도 그 집안에서 아이의 미래에 대해 같이 꿈을 꾸고 길을 제시해줄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이내 입을 다물어야 했다. 아이는 그러나 이러한 자신의 처지와 환경을 깨닫고 있지 못했다.

내가 서울의 논술학원에서 가르쳤던 또래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원어민 강사와 영어 공부를 하고 대학원 이상의 학력을 가진 선생님들과 토론을 하며 말하고 글쓰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내 조카애는 중학생이 되어서도 변변한 영어 사전이 없었다.

몇 년만에 본 아이는 밖에서 많이 놀아서인지 얼굴이 검었고 표정이 없었다. 어둡지도 밝지도 않았다. 차라리 어두웠다면, 자기의 생활에 대해 적극적으로 불만을 가지고 그 상황을 벗어나보려는 눈빛을 보였더라면 더 반가웠을지도 모른다.

산동네에 햇볕이 가장 일찍 드는 자리에 살고 있었지만 아이의 환경과 미래는 볕도 안 드는 개천바닥에 쳐 박혀 있는 것과도 같았다. 그날 밤 난 배로 돌아와 좁은 함정 침상에서 소금 친 미꾸라지처럼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통계로 보는 볕 안 드는 개천 바닥

내 조카애와 같은 비슷한 상황에 빠진 아이들을 숫자로 객관화시켜 놓은 것이 앞서 언급한 ‘2009 한국 아동・청소년 종합실태조사’이다. 이 자료를 좀 더 보면 12~18살의 빈곤층 아이 중 58%는 한 부모 가정에서 자란다. 이와 비교해 차상위 이상 계층의 아이들은 6.5%만이 한 부모 밑에서 생활한다. 가난이 이혼이나 한 부모 가정 형성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직접 이 조사에서 분석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나타난 조사결과만으로는 가난한 집의 아이들이 보다 관심과 배려를 덜 받을 확률만을 높다.

빈곤층의 아이들은 대부분은 내 조카애와 마찬가지로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주로 돌보고 3~5살 사이의 빈곤층 아동들은 무려 20.8%가 조부모 혹은 친척이 돌보고 있었다. 이와 비교해 차상위 이상 계층에서는 4.6%만이 조부모 혹은 친척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이에 따라 부모와 함께 거의 매일 책 읽는 아이들의 비율도 6~8살의 경우 빈곤층이 13.1%, 차상위 이상 계층이 44.1%로 약 3배의 차이를 보였다. 9~11살의 경우는 빈곤층이 12.0%, 차상위 이상층이 17.5%로 그 차이가 줄어들었지만 이는 아이가 학교에 다니고 자기 시간을 스스로 가지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면서 부모의 직접관리가 줄어드는 조건을 생각해봤을 때 당연한 결과이다.

오히려 이 경우 차상위 이상층이 부모와 함께 책 읽는 비율이 44.1%에서 17.5%로 현저히 줄어드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바로 차상위 이상층에서는 학교에 들어가 본격적인 개인학습이 시작되는 9살 무렵부터는 사교육의 비중을 높여 부모보다는 전문강사와 제도화된 사교육 시스템에 아이를 맡긴다고 볼 수 있다. 갈수록 빈곤층과 차상위 이상층의 경쟁이 공정한 기반 위에서만 이루어질 수 없는 조건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물론 조부모나 친척의 보살핌을 받는다고 해서 반드시 불행하거나 학습능력이 떨어진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종합적인 인지결과 발달을 조사한 항목을 보면 부모와 떨어져 보내는 시간이 많은 빈곤층의 아이들은 차상위 이상 계층의 아이들보다 인지능력 발달에서 뒤처지는 것이 드러났다.

8살 아이들을 기준으로 했을 때 수리 사고력 지수는 빈곤층이 11.84, 차상위 이상층이 12.32로 나타났고, 사회적 사고력 지수는 빈곤층이 11.84, 차상위 이상층이 12.32로 나타났다. 이는 학교수업과 향후 인지발달에 있어서 중요한 부문인 수리와 사회 발달영역에서 가난한 집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집 아이들보다 전반적으로 뒤떨어짐을 보여준다.

또 차상위 이상 계층의 아이들 중 66.5%가 부모와 함께 한 달에 1회 이상 외식을 하는 반면 빈곤층은 28.3%만이 이에 해당됐다. 부모와 함께 하는 쇼핑의 경우도 차상위 이상층이 49.8%가 한달에 1회 이상 부모와 자녀의 동반쇼핑을 하는 반면 빈곤층 아이들은 23.5%만이 그럴 기회를 누린다. 나들이의 경우 차상위 이상에서는 23.4%가 부모가 한 달에 1회 이상 자녀를 데리고 바깥 바람을 쐬지만, 빈곤층에서는 15.1%만이 그런다고 답했다. 공연관람에서도 차상위 이상층은 14.1%, 빈곤층은 7.1%의 비율을 보여 부모와 자녀가 함께 돈을 쓰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기회가 각 항목마다 2~3배 정도는 차이가 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것도 양적으로 따졌을 때 이렇다는 것이지 그 질을 따지고 든다면 차이가 더욱 벌어질 수도 있다. 예컨대 차상위 이상층에서는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외식의 경우 기억에 남을 만한 식사만을 기준으로 생각해서 근사한 패밀리 레스토랑 등에 가는 경우를 가정하고 답했을 수도 있다. 주말저녁에 집에서 밥해 먹기 귀찮아 동네 중국집을 가거나 삼겹살집에 가는 경우의 수는 그냥 집안에서의 가족 식사를 확장한 개념으로 생각해 빠졌을 가능성도 고려해보아야 한다.

그러나 빈곤층에서는 그냥 밥하기 귀찮다고 휙 나가 동네 근처 식당에서 식사하는 일은 거의 없다. 나가면 돈 드는 외식을 밥 먹듯이 할 수 없는 노릇이고 외식환경의 질도 상당히 다를 수 있다. 공연관람의 경우도 차상위 이상층이 연극이나 오페라 등을 기준으로 답했을 수도 있는 반면에 빈곤층에서는 극장 나들이를 공연관람의 전부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자료의 과잉해석도 금물이지만 축소해석도 금물이다. 그리고 이 경우에는 축소해석을 한다고 해도 양적인 숫자에서 차상위 이상 계층과 빈곤층의 상대적 비율이 2~3배 정도 차이가 나는 것은 확실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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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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