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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16 그는 아마도, 꼭, 그녀를 죽이고 싶었던 것은 아닐거야 -히가시노 게이고 <범인없는 살인의 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범인없는 살인의 밤>
-히가시노 게이고, 윤성원 옮김
랜덤하우스 코리아, 2009. 4.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 소설 7편을 묶은 단편집. 원래 1994년에 나온 책이다. 







(* 히가시노 게이고의 범인 혹은 범인의 동기에는 일종의 센티멘탈이 있는데, 여기에 수록된 7편의 단편들은 그런 경향을 집약적으로 잘 보여준다. 
이 소설들은 조금씩 그 색깔이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범인의 '의도'와 관련해서 읽을 수 있다. 범인의 의도란 건 결국 범죄의 동기에 관한 것이다. 범죄 자체보다 범인에 대해, 특히 그가 왜 살인을 하게 되었는가, 뭐 이런 것에 관련이 되는 것이다. 우아하게 말해서 인간에 대한 관심이라고 해둘 수 있을 것이지만, 사실, 그러기에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주인공들은 너무 통속적이어서 별달리 인간에 대해 말해주는 것이 많지 않다.) 




미스테리에서  살인 혹은 범죄의 동기로 범인의 의도는 명확히 존재한다. 그에게 반드시 복수하겠어! 이 고비를 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녀의 유산이 필요해! 그 년놈들을 용서할 수 없어! 그만 없으면 나의 과거를 알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 등등. 만약 그런 것이 없다면, 그건 정신이상자의 연쇄살인 내지 사이코패스의 이상행동일 뿐이다. (그리고 범죄 이후의 행동들의 전형적인 의도는 '완전범죄', 그러니까 '아무도 내가 범인인 줄 모를거야' 를 위한 것들이다.) 이 소설집의 소설들은 그렇지 않다. 그러니까, 난 사실 그/그녀를 꼭 죽이고 싶었던 건 아니야.

7편의 살인에서 살인의 동기는 필연적으로 불타오르는 어떤 것이 아니다. 심지어 선의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7편의 소설에 등장하는 살인자들은 대부분 (마지막의 트릭소설을 제외하고는) 그저 악한 존재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범인을 동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이다. 선과 악의 기묘한 혼합, 세상사 다 그렇듯이 선악이 칼같이 구분되는 경우가 어디 그리 많더냐, 살인자라고 다 나쁜 놈은 아니었던 것이다...이렇게  해두고 싶지만, 사실 그조차도 이미 미스테리의 한 전형인데다, 이 소설들은 딱히 그렇게 인간 그 자체를 겨냥하는 것이 아니다.

나비효과, 카오스 이론. 뭐, 이런 걸 떠올리고 연상해도 좋다. 나비의 날개짓이 폭풍을 일으켰다 이거지.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낳는 사소한 어떤 것.

오히려 이 소설들은 공통적으로 중첩되는 우연으로 인해 도대체 예측하지 못한 결말을 맺게 된다는 점에서 허무하기조차 하다. 그러니까, 이 소설들을 요약하면 한 마디로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라는 것이다.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라는 것은 결국, 세상 만사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어디에 있겠느냐는 오래된 지혜(인간이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일은 세상에 없다는 깨달음!)에 다름 아니다.

거기에 덧붙여  이 소설들이 나아가는 방향이 전형적인 미스테리, 혹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살인에 대한 고정관념과는 다르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살의까지는 아니었는데, 작은 고의들이 중첩되어 살인이 일어나고, 정말 지극히 우연한 계기가 살인으로 귀결되고, 선의가 좌절을 불러 일으키고, 애정이(치정이 아니라) 살인을 낳고 만다. (혹은 바로 아주 우연한 작은 일로 완벽히 짜여진 살인이 무너진다.) 그래서 결국, 확인하게 되는 것은 세상은 냉혹하고,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서(거미줄에 걸린 나비와 같이 가련한!)거나, 혹은 반대로 살인의, 범죄의 끔찍한 일상성이다. 

아마도 이것은 이 소설들이 일정하게 반전을 의도하고 쓰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장편에서는 꼼꼼하게 서사의 흐름을 구축하고 감정의 흐름을 만들어서 작가 스스로가 예측가능한 경로를 설정할 수 있지만, 단편의 경우에 반전은 사람들이 익숙하게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에 의존하게 된다. 살인, 살인의 동기, 범인의 정체, 범죄의 방식에 관련한 고정관념, 상식적 맥락에 기대어 이를 넘어서는 것으로 반전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읽는 재미가 있다. 어찌됐든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이다. 역시, 살인에 대한 고정관념은, "살인은 대단한 일이야" 내지는 "살인자는 어딘가 이상한 혹은 특별한(하다못해 동기에 있어서라도) 사람이야"인 것이다. 잘 짜여진 트릭과 퍼즐이 살인에 대한 그런 고정관념을 대변한다면, 여기 이 소설들은 그러한 생각을 비틀어서 사실, "살인은 그저 우연히, 일어나는 거야"로 끝내버리는 거다.(지극히 통속적인대로, 확실히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은 재미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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