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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23 꿈은 꿈일 뿐이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개천에서 용나지 않는 시대에 고함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정대진 (책마루,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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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초안이며 보다 자세한 내용은 위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개천에서 나는 용들을 보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세상입니다. 부의 격차가 교육격차를 통해 대물림되는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닙니다만 오늘날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그 틈새를 비집고 나올 이무기들의 용트림을 보기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지금의 교육 양극화가 계속되고 "개천에서 용 나지 않는 시대"로 굳어진다면 우리 십대들이 기성세대가 되어 살아갈 미래사회는 양극화로 인한 불안과 갈등이 팽배한 세상이 될 게 분명해 보입니다. 아무런 방어도, 아무런 주장도 하지 못한 채 십대들은 어두운 미래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습니다. 그 미래를 바꾸는 일을 생각해보자고 몇 편의 글을 연속해서 올리겠습니다.




<글 싣는 순서>

막힌 물길

중학교 3학년, 이재민의 경우/ 꿈은 꿈일 뿐이다 / 함께 꾸는 꿈도 현실이 되지 않는다 / 계속 꿈만 꾸어야 하는가 / 다른 꿈을 꿀 수는 없을까 / 다른 꿈도 못 꿀 수 있다 / 볕도 안 드는 뿌연 개천에서 살아가기 / 통계로 보는 볕 안 드는 개천 바닥 / 오늘날의 개천은 강과 바다로 닿지 않는다 / 강과 바다에 사는 아이들은 행복할까

개천에서도 용은 났으나

개천에서도 용은 났으나 / 다이너마이트에 불장난하는 대한민국? / 억울하면 출세해라, 왕조의 몰락과 식민지배/ 억울하면 출세해라, 정부수립과 고착된 기회주의 / 억울하면 출세해라, 뿌리 깊은 기득권과 막힌 공로(公路)/ 개천에서 용 되려면 무조건 “중앙으로!” / 대학입시는 계급투쟁 / 가족 이기주의 / 늘어나는 사회비용 / 인삼이나 산삼보다 귀한 고3 / 무한발전 사교육 / 병목현상 / 패자부활전도 없다 / 왜 이렇게까지 / 개천에서 난 용 한 두 마리로는 안 된다

물길을 트자

한 곳으로만 흐르는 물길, 막힐 수밖에 없다 / 한 곳으로 갈 거면 물길이라도 다양하게 / 개인의 의지보다는 시스템으로 / 시스템의 가능성 하나, 국가 엘리트 육성 프로그램 / 가능성이 여는 세상①- 개천에서 난 용,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만들다 / 시스템의 가능성 둘, 교육발전종합계획 / 가능성이 여는 세상 ② - 두렵지 않은 ‘제2의 인생’, 인생을 두 배로 사는 세상 / 새로운 사회를 위한 가능성, 만16세 투표권 / 가능성이 여는 세상 ③ - ‘엘리트 농사꾼’, 김의원


 
 
1장 막힌 물길

중학교 3학년, 이재민의 경우
동쪽 하늘로 비행기가 날아가고 있었다.
재민이는 무심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동쪽으로 날아가는 비행기에 자기 자리도 하나 생겨 지금이라도 폴짝 올라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산을 깎아 만든 학교는 언덕 빼기에 위치해 있어 하굣길은 하늘에서 멀어져 더욱 땅으로 꺼져갈 뿐이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이 오늘은 더욱 길게 느껴졌다. 어젯밤 재민이는 엄마에게 오랫동안 생각하던 꿈을 털어놓았다.

“엄마, 나 미국으로 조기유학 가고 싶어요”

재민이는 서울 변두리에 있는 한 중학교의 3학년. 학급회장을 하고 있고 성적도 전교 5등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우수한 학생이다. 재민이의 아버지는 경기도에 있는 중소 건설회사에 다니는 샐러리맨이고, 어머니는 재민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부터 재민이와 여동생의 학원비라도 벌어야겠다며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고 있다. 재민이의 아버지가 한 달에 약 300만원 정도 월급을 받고있고 어머니가 한 달에 130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그중 아파트 대출금과 이자를 갚기 위해 매달 은행에 170만원을 내고, 정말 알뜰살뜰 기름기를 쏙 뺀 4인 가족 생활비 130만원에, 중3인 재민이와 초등학교6학년인 여동생의 학원비와 교재비 등 100여만 원을 빼고 나면 재민이의 엄마와 아빠는 노후대책도 제대로 못 세우고 있는 형편이다. 요즘같은 세상에 겨우 적자나 면하고 있는 걸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거기다 대고 재민이는 벌컥 조기유학을 가고 싶다는 자기의 꿈을 이야기했다. 저녁을 먹다가 이 이야기를 들은 재민이 엄마는 생각해보자고 이야기는 했지만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조기유학을 가지 못하는 사정을 어떻게 재민이가 상처받지 않고 받아들이게 설득할까 하는 고민에 빠져들었다.

회사 야근을 마치고 밤 10시가 넘어 집에 온 재민 아빠에게 엄마는 상황설명을 했다. 재민 아빠는 신경이 곤두선 목소리로 자기는 죽어도 기러기 아빠는 못한다고 딱 잘라 말하며 신경질적으로 넥타이를 풀었다. 자기와 동갑인 회사 사장이 고등학교 1학년 아들을 미국으로 유학 보낸 기러기 아빠인데 옆에서 보니 그 생활은 죽어도 못하겠다는 설명도 곁들었다. 이야기를 듣던 재민이 엄마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여보, 우리 형편에 애를 유학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해?”

와이셔츠 단추를 풀던 재민 아빠의 손짓이 잠시 멈칫했다.


꿈은 꿈일 뿐이다
재민이가 미국으로의 조기유학을 꿈꾸기 시작한 것은 지난 학기여서부터였다. 학교 앞 교회 목사님의 아들인 자기 반 친구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면서부터였다. 친구의 아버지인 동네 목사님은 미국에서 신학공부를 하고 오신 분이었다. 그 연고로 재민이의 친구는 미국으로 조기유학을 떠날 수 있었다. 재민이는 분명 자기가 그 친구보다 공부도 잘하고 모든 면에서 한 수 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기도 못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기만 잘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었다.
재민이네는 미국에 마땅한 연고도 없었을 뿐더러 미국에서의 생활비와 학비 등을 감당할만한 재력이 되지 않았다. 재민이가 유학 간 친구에게 인터넷 메신저로 물어보니 학비가 싼 미국 공립학교에 다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곳은 그다지 교육의 질도 높지 않고 그리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사립학교에 가서 제대로 교육을 받아야 한국에서도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대학교로 진학을 할 수 있을텐데 재민이네 형편으로는 그 값을 감당할 수 없었다. 재민이네 부모님은 미국이라는 나라에 다녀온 적도 없고 미국가는 비행기값만 해도 재민이 엄마가 한 달 동안 화장품 방문판매를 해서 버는 돈보다도 비쌌다.

재민이는 이리저리 벽만 느꼈다. 학교에서 집으로 내려가는 언덕길에 늦은 오후의 누런 햇살이 비쳐 재민이의 그림자가 우울하게 늘어졌다. 재민이는 어젯밤 엄마와 아빠가 안방에서 다투던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의 유학 이야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유학 보낼 돈도 없지만 가족이 떨어져 살 수는 없다고 난리였고, 엄마는 아빠에게 그럼 당신이 재민이한테 사정설명을 하라고 공을 떠넘겼다.

모든 상황은 명확해졌다. 재민이가 꿈을 접으면 모든 게 평상시로 돌아가고 조용하게 한 가족은 다시 살 수 있다. 하지만 자기집 사정이 자기가 꾸는 꿈을 전혀 지원해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는 걸 알아버린 재민이는 다시 그 이전처럼 성실하게 공부하며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기운이 쭉 빠졌다. 아무리 자기가 공부를 잘하고 능력이 있어도 꿈을 펼칠 기회를 제대로 잡을 수 없다면 다 소용없는 일 아닌가. 막막한 질문이 재민이의 가슴에 아로새겨졌다.

함께 꾸는 꿈도 현실이 되지 않는다
중학교 3학년생인 재민이는 이렇게 꿈을 접었다. 여기서 재민이는 실제 인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는 재민이와 비슷한 아이들이 얼마든지 있다. 재민이와 같은 아이들은 부모의 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지위의 부족함 때문에 ‘조기유학’ 등과 같은 ‘출세’를 위한 경로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자신의 의지와 능력과는 상관없이 자기의 꿈을 펴보지도 못하는 부류이므로 이름도 ‘이재민’으로 붙여보았다. 자연재난으로 인한 이재민이 아니라 사회재난으로 인한 이재민이라는 의미이다.

IMF 이후 사회적 가치기준이 급변하면서 개인의 성공과 안정을 위한 기대수준과 그 코스의 난이도는 더 높아졌다. 개방과 무한경쟁의 시대에 조기유학은 영어를 익히고 새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전문지식을 익히기 위한 첫 발판처럼 여겨졌다. 한국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석박사 과정을 공부하기 위해 떠나던 유학의 일반적인 모습은 깨지기 시작했다. 물론 IMF 이전부터 조기유학 붐은 서서히 끓어오르고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1993년 출범하고 1995년부터 ‘세계화’를 국정의 주요지표로 삼으면서 대학생들은 어학연수를 떠나고 여유가 되는 중고등학생들은 조기유학을 떠났다. 일찍 시작해야 출세할 수 있다는 풍토와 인식이 퍼져갔다.

나도 그 무렵 ‘이재민’과 비슷한 경험을 했다. 내가 중3이 되던 1993년의 어느 봄날 신문에 하버드대를 최우수로 졸업한 한 한국 젊은이의 기사가 실렸다. 그 청년은 영화배우 남궁원씨의 아들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7막7장”이라는 자전적 에세이도 출판했다. 졸업 후 잠시 한국에 와서 각종 토크쇼와 잡지 등에 나오며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현재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하고 있는 홍정욱씨다. 당시 내게 한국인이 하버드에서 최우수 졸업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홍정욱씨가 중3에 조기유학을 떠나 그런 성취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놀라움이 더욱 컸다. 때마침 재민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내 주위에는 아버지의 연고를 바탕으로 영국유학을 떠난 또래친구가 있었다. 내 어린 생각에 그 친구는 이제 곧 옥스퍼드나 캠브리지에 진학해 제2의 홍정욱이 될 것처럼 보였다.

나는 한국에서 피터지게 공부해서 정말 최고로 잘 가면 서울대를 갈 터인데 노는 물이 다른 내 친구는 비슷한 노력을 들이고도 세계 명문대에 입학할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 때 나는 학생회장을 하고 있었고 전교 등수도 괜찮은 잘 나가는 학생이었다. 은근히 그 친구보다도 내가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한국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중에는 그 친구한테 꿀릴 것 같다는 괜한 위기감이 생겼다. 세월이 지난 후 다 부질없는 생각임을 차차 알게 되었지만 어쨌든 그 당시 조기유학 붐에 충격을 받았던 지은이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나는 조기유학의 꿈을 이루려고 실제로 이리저리 그 가능성을 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의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던 해에 중풍으로 쓰러져 줄곧 집에서 투병생활을 하고 있었고 어머니가 재래시장에서 상점을 운영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었다.

재민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값 한 번 대기도 힘든 환경이었다. 그래도 나의 부모님과 주변 어른들은 관심을 가지고 유학길을 알아봐 주었다. 하지만 알아볼 수만 있을 뿐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함께 꾸어도 꿈은 현실이 되지 않았다. 혼자 꾸는 꿈은 꿈일 뿐이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말은 그 당시 나에게 해당되지 않았다. 철이 날 무렵 맛본 세상의 쓴맛이었다.

계속 꿈만 꾸어야 하는가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쓴맛을 보는 10대들이 도처에 있을 수 있다. 해외진출 비용이 저렴해지고 다양한 경로로 어린 학생들도 해외로 유학을 떠날 수 있는 시절이기는 하다. 하지만 일정 소득 이상을 갖춘 집안이 아니면 자녀 한 명당 수 천 만원에 이르는 유학비용을 대기는 쉽지 않다. 2009년 3월 뉴스전문채널 mbn의 리포트에 따르면 조기유학 비용이 학생 일인당 약 6천만 원에 이른다고 한다. 동남아에 보내도 2천 5백만 원은 족히 든다. 겉으로 드러나는 비용은 이렇지만 만약 가족이 떨어져서 살게 되면 그로 인해 겪어야 되는 가족 간의 상실감 같은 돈으로 환산하기 힘든 정서적 비용까지 합한다면 그 비용은 웬만한 경제력으로 충당하기 힘든 것이 된다. 억대 수입을 올리는 가정이 아니고서는 웬만해서 엄두를 내기 힘든 일이 조기유학이다.

2009년 4월 발표된 서울 강남교육청의 ‘2008학년도 초등학생 유학 현황’을 보자. 이에 따르면 2008년 한 해 동안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 관내 51개 초등학교에서 2천165명이 조기유학을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지역 전체 초등학생인 5만3천228명의 4% 수준이다. 학급당 학생 수를 25명으로 잡는다면 한 학급마다 한 명씩 조기유학을 떠난 셈이다. 그렇다면 서울 전체지역의 평균은 어떨까?

2008년 같은 해의 전수조사는 아니지만 참고할만한 2007년 자료를 보면 서울지역 초등학생 유학생은 7천183명으로 서울 전체 초등학생 66만5천227명의 1%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서울 전체 초등학생 평균 조기유학율 1%에 비해 강남 지역은 4%를 기록하고 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약 4배에 이르는 수치이다. 그리고 강남 지역의 조기유학생을 유형별로 따지고 보면 기러기 가족처럼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조기유학생이 1천250명으로 전체의 58%에 달한다. 외교관이나 상사 주재원 등 부모가 동행한 705명(32%), 해외이주자 210명(10%)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이다. 이른바 한국 부의 상징지역인 강남의 자녀들이 여타 서울지역의 평균보다 4배 가량 많은 조기유학을 떠나고 그 내용도 자연스러운 가족의 이주가 아닌 오로지 교육목적만을 위해 어린이와 한 부모만 떠나는 경우가 반을 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교육목적이라는 것도 주로 영어교육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캐나다 등 영어권 국가에 2008년 강남권 초등학교 유학생 중 80%인 1천725명이 몰려들어 그 편중현상이 심했다. 영어권 국가 다음으로는 중국으로 83명이 유학을 떠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영어권 국가의 1천725명의 20분의 1정도에 지나지 않는 숫자이다. 영어가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수단이고,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세계를 무대로 뛸 수 있는 인재들을 어렸을 때부터 육성한다는 차원에서 보자면 전혀 문제가 없는 현상이다. 하지만 문제는 획일적인 유학현상에 있다. 조기유학이라는 선별된 기회를 주로 서울 강남 지역의 일부 계층을 중심으로 소수만이 누리고 있고 유학의 질적인 내용도 영어학습과 서구 국가로만 편중된 획일적인 구조가 조기유학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획일적인 구조가 지배하고 있기에 능력있는 학생들이 다양하게 꿈을 펼치고 능력을 발산할 통로가 아주 좁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이재민과 같은 학생들은 설 땅이 없다. 상대적 박탈감. 이런 조건에서 이재민과 같은 학생들이 어린 시절 온 몸과 마음으로 배우게 될 개념이다. 계속 꿈만 꾸든지 아니면 아예 포기하고 꿈을 소중한 추억으로만 간직하며 살아야 하는 게 재민이와 같은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계속)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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