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맑은고딕 폰트를 사용해서 쓰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글은 뒤에 써야겠지만 일단 머리를 팽팽 돌아가게 하기 위해 한 가지 사례를 떡밥으로 던져 놓고 시작해 보자.

20세기 물리학의 발달로 우리는 방사성 원소들이 자연 상태에서 스스로 붕괴한다는 사실, 즉 핵분열에 대해 알게 되었다. 과학사에 대해 조금의 상식이라도 있다면 익히 알고 있는 것이겠지만 리제 마이트너라는 걸출한 여성 과학자가 이 핵분열의 원리를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토 한과 프리츠 슈트라스만의 공적으로만 기억되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주의를 환기해 보자.

아무튼 양성자 92개로 이루어져서 원소 번호가 92인 우라늄은 자연상태에서 발견되는 원소 중 가장 무거운 원소이다 (그래서 열화우라늄탄은 "저열한" 상태의, 그러니까 순도가 낮은 우라늄을 탄두의 재료로 사용한다는 뜻이고, 그 이유는 우라늄이 무겁고 단단한 금속이기 때문이다. 강철 따위는 가볍게 뚫는다). 보틍 핵무기 얘기가 나올 때 듣게 되는 플루토늄은 우라늄의 핵 분열(보통은 원자로 가동) 과정에서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대부분이다(참고로 플루토늄은 원자번호 94). 그리고 자연상태의 우라늄 대부분은 우라늄-238이다(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원자핵에 92개의 양성자와 146개의 중성자가 들어있어서 질량비가 대체로 수소 원자의 238배 정도가 된다는 뜻이고, 이런 표기는 양성자의 개수는 같지만 중성자의 개수가 틀린 동위원소를 표시하기 위한 표준적인 방법이다). 

먼저, 우라늄-238의 반감기는 약 44억년이다. 다시 말해, 지구가 처음 생겨났을 때 지구에 있던 우라늄은 (생성 초기의 고온 고압 상태를 무시한다면) 지금보다 두 배 가까웠다는 이야기다.  더 쉽게 생각해 보자. 여기에 1킬로그램짜리 우라늄 막대를 갖고 있다고 하자. 44억 6천만년이 지나면 그 막대에는 500그램의 우라늄만이 남아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라늄 원자 하나만을 놓고 본다면? <반감기, 즉 붕괴할 확률은 동일하다> 그러므로 44억 6천만년 후에 그 원자핵 하나가 붕괴했을 가능성은 반반이다.

하지만 다시 44억 6천만년을 더 기다린다면?

원자핵은 과거를 기억하지 않으므로, 똑같은 확률이 지배한다. 다시 44억 6천만년을 기다린다고 하더라도, 역시 그 원자핵 하나가 붕괴할 확률은 50%이다.

이거 재밌지 않나? 매 반감기 주기당 특정한 원자핵이 붕괴할 확률은 항상 50%이다. 그러므로 운 좋은 원자핵 하나를 찾으면 우리는 우주 끝날 때까지 수조년 동안 붕괴하지 않는 녀석 하나를 볼 지도 모른다. 그게 설령 우주에 마지막 남은 우라늄 원자핵 하나라고 할 지라도, 매 44억 6천만 년마다 이 원자핵이 붕괴할 확률은 반반이다. 동전을 던져 앞, 앞, 앞, 앞, 앞, 앞, 앞, 앞이 연속으로 나오는 게 아주 어려운 일이 아닌 것처럼, 이 반반의 확률을 계속 빗겨나가며 마지막 우라늄 원자핵으로서 수백억 년 쯤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여러분은 지금 100억 번째 반감기를 지나도록 붕괴하지 않는 우주 유일의 우라늄 원자핵을 보고 계십... 앗 지금 붕괴를?"

이 때 우라늄 원자핵의 자연 상태의 핵분열이 통계적 사건이라는 건, 반감기라는 통계적인 확률이 "필연적으로 관철된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우라늄 1킬로그램 쯤 되면 엄청난 양의 원자핵이 들어있기 때문에 그 전체를 놓고 볼 때 반감기가 지켜지지 않을 확률이 극도로 낮을 뿐이다.

예를 들어, 전 우주의 우라늄을 여기 다 모아놓고 44억 6천만년을 지켜보면 정확히 절반이 붕괴했을 확률은 극도로 높고 그 중 45%만 붕괴하고 55%가 남아있을 확률은 극히 낮다. 그러나 우라늄 원자핵 100개를 놓고 본다면, 44억 6천만년 후에 정확히 50개가 아니라 49개라든가 51개의 우라늄 원자핵이 남아있을 가능성은 꽤 높게 된다.

무슨 이야기냐. 전 우주에 우라늄 원자핵 2개만 남고,  그 하나를 내 앞에 두고 다른 하나를 우주 저편으로 보냈다고 한다면, 44억 6천만년 후에 내 앞의 원자핵이 붕괴하지 않는다면 "반감기라는 통계적 확률"을 관철하기 위해 우주 저 편의 원자핵이 반드시 붕괴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주에 우라늄 2킬로그램이 남았을 때, 1킬로그램 씩 나누어 똑같이 분배한 뒤 44억 6천만년이 지나면 어떨까? 내 앞의 우라늄이 미묘하게 1그램 정도 우라늄이 더 남았다면, 저 우주 건너편의 우라늄 1킬로그램에서는 1그램 정도 우라늄이 더 붕괴했을 가능성이 더 높을까 그렇지 않을까?

내가 오늘 던질 떡밥은 바로 이 문제다. 잘 생각해 보라.


이왕 골치 아픈 거 여기서 더 황당한 실험 하나만 언급해 보자.

소립자들 특성 중에서 정말로 "통계적"으로만 나타나는 속성이 있다. 그걸 "뜨거운 - 차가운" 대립 속성 쌍이 50대 50의 확률로 나타나고, "건조한 - 촉촉한"의 쌍이 50 대 50으로 나타난다고 치자.

우리는 검출기를 통해서 "뜨겁고 차가운" 것들을 서로 구별해낼 수가 있고, "건조한 - 촉촉한" 것들도 마찬가지다. 전자의 검출기를 A라고 하고 후자의 검출기를 B라고 하자.

자 이제 2000개의 소립자(전자와 같은)를 A 검출기를 통과시켜 "뜨거운" 입자만 걸러낸 뒤 이것을 B 검출기에 다시 넣어 "촉촉한" 것만 골라냈다고 해보자. 우리는 이제 500개의 "뜨겁고 촉촉한" 입자를 갖고 있는 셈이다. 다시 이것을 A 검출기에 통과시키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놀랍게도 A 검출기를 통과한 소립자는 "뜨거운" 입자가 250개, "차가운" 입자가 250개로 나타난다.

이런 실험이 의미하는 것은 "측정-관찰" 이전에 어떤 고정된 속성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놀라운 결론이었다.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자연은 원래 그따위로 생겨먹은 것이다.

이렇게 인류는 물리적 확률로서의 chance를 이해하기 위해 양자역학이라는 가슴아프도록 황당한 세계를 통과해야만 했던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고.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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