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보니 글이 길어져서, 글을 둘로 나눕니다.)

최근의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의 60-70% 이상이 미디어관련법에 대해 반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일단 정부여당이 국민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 판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미디어법들의 국회 통과에 관해 국민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하나는 법안의 내용과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절차와 관련된 것이죠. 

먼저 첫 번째 문제. 미디어법 자체의 쟁점은 간단합니다. 여당에서 내세우는 명분은 미디어 선진화입니다. 최근에 급속하게 변한 미디어 환경에 맞게 미디어 산업구조를 개편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도 창출하겠다는 것이지요. 야당에서 내세우는 반대 논리는 미디어 선진화도 좋고 다 좋은데, 이게 꼭 대기업과 종이신문사(사실은 조중동)의 방송산업 진출에 의해서만 이루어져야 하느냐 하는 것이죠.

이 문제에 대해 정부여당은 국민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설득하겠다는 의지도 별로 없는 것 같구요.) 다시 말해, 대기업과 신문사가 방송에 진출할 때 나타날 수 있는 여러 문제점들에 대한 우려들이 있고, 또 외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경우에 문제가 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는데, 이런 문제들에 대해 설득력있는 아무런 대답도 내놓지 않고 있지요. 

(그러니까, 누가 미디어법이 통과되면 산업파급효과가 얼마이고,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가 몇십만개이고 어쩌고 하면서 이상한 숫자를 막 들이대면, 그 이야기에 신경쓸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그것도 신뢰가 안 가긴 마찬가지지만, 암튼 그런 이야기에 신경쓰지 마시고(그게 좋은 거라 치고), 그 좋은 걸 왜 꼭 조중동이 해야만 하는 거냐고 반문하시면 됩니다.)
 
근데, 이렇게 잘 납득되지 않는 법안을 국회에서 엉터리로 통과시켜 버리면서 문제가 커져버렸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억지로 해서는 부작용이 큰 법인데, 하물며 이런 문제가 많은 법이라면 오죽하겠습니까? 여론조사를 보면, 흔히 보수우파로 분류되는 쪽, 예컨대 MBC가 '종북좌빨'의 손에 장악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 법안에 반대하는 여론이 높은데, 많은 경우 이 사람들은 법안 통과과정의 우여곡절에 실망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보수우파에서 내세우는 것 중 하나가 법질서 확립이죠. 근데 국회에서 이렇게까지 엉터리로 법을 통과시킬 줄은 몰랐다는 거죠.

어쨌든, 미디어법안에 대한 국민의 반대는 크게 이 두 가지에서 기인하지 않나 생각하는데요, 사실 국정 당사자의 핵심 정책이 다수 국민들의 반대에 부딪치면서 난항을 겪거나 좌초하게 되는 일은 비단 이번 정권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최소한 국민의 정부 때도, 또 참여정부 때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 일이지요. 하지만 그때와는 다른 점도 있습니다.

그때는 정부여당이 어떻게든 반발하는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명분과 논리가 있었고(물론 그에 반대하는 쪽의 명분과 논리도 만만찮았지요.), 또 많은 어려움을 겪어가면서도 그들을 어떻게든 설득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있었지요. 예컨대 이라크파병이나 종부세 문제처럼, 어떤 문제가 국민적 쟁점이 되어 많은 국민들이 그에 반대할 때도, 정책추진자들의 입장에서 나름 타당한 논리를 제시하고 국민들을 설득해 가려고 하는 노력이 있었다는 거지요. (물론 한미FTA 같은 경우처럼, 그런 노력이 부족했던 경우도 있었지요.)

그런데, 지금 정부는 이러한 설득의 의지와 노력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달라진 점이지요. 말하자면, 어차피 반대할 놈들은 반대하게 돼 있으니까, 너네는 짖어라 나는 그냥 마이 웨이다, 이런 식이지요. 미디어법 처리 과정에서도 이러한 태도는 잘 드러납니다. 앞서 말했듯, 설득의 논리도 아주 궁색하구요. (정말 미디어 선진화가 문제라면, 국민적 논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대기업과 신문사의 지분소유 등의 쟁점사항을 미뤄둔다든지, 뭐 다른 합의점들을 찾아낼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있지요.)

사실, 지금의 상황은 이 법을 지지하는 쪽에서도 실제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고자 할 때는 이 법이 종이신문, 아니 사실은 조중동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입니다. 미디어 선진화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지요. 그러면서, 이게 왜 나쁘냐, '종북좌빨'로부터 방송언론을 구해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공격을 하고 있는 형국이지요. 일테면, 밑바닥 정서의 바로미터인 인터넷 언론의 댓글들을 보면 주로 이 지점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미디어 선진화는 그냥 명분일 뿐이라는 사실을 그들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지요. 근데 이게 자신들의 명분을 갉아먹을 수밖에 없는 아주 난처한 상황입니다. 조중동에서는 지면을 통해 미디어법이 자신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그렇게 말하는 건 정치적 공격일 뿐이라고 연일 주장하고 있지요. 법을 추진한 것은 조중동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 근데 조중동이 방송언론을 장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상황인 것이지요. (프로이트를 읽은 적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게 빌려온 항아리를 깨뜨린 자가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암튼 별로 설득력이 없는 상황입니다.)

근데 다수가 반대하면 정책을 추진할 수 없는 것이냐? 그건 아니지요. 만약 그렇다면, 정책결정을 항상 여론에 따라서 하면 되지 정책결정자가 따로 있을 필요가 없지요. 이렇게 하게 되면, 요즘 유행하는 말로 '포퓰리즘'이 됩니다. 다수의 의견이 항상 맞다고 할 수는 없는 거니까, 다수가 반대하더라도 정책을 추진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문제는 반대 자체가 아니라 정부여당이 반대하는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설득의 내용도 없고 설득의 프로세스도 없지요. 미디어법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저 바캉스철에 맞춰 법안을 날치기하고 나서, 이 시기만 지나가면 국민들은 다 잊어버리겠지, 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정치공학적 발상이 문제인 겁니다. 

(이러한 시각을 솔직하게 잘 보여주는 것이 다음의 중앙일보 김상택의 카툰입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10&sid2=307&oid=025&aid=0002024212&type=1 이미 바캉스를 떠나는 시민들에게조차 미디어법은 까맣게 잊혀졌다는 거지요. 이게 7월 25일자 만평이니까 날치기 통과되고 아직 3일도 안됐을 때의 만평입니다. 참 오만하지요?ㅋ)

현 정부에서 하는 일은 이런 식이지요. 진지하게 의제를 던지고, 토론하고 설득하고, 그리고 나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동의하든 하지 않든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부치지요. 그래서 불도저식 일방통행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지요...

(2편에서 계속됩니다.)
Posted by vinove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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