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공놀이 노래>, 요코미조 세이시//정명원 옮김, 시공사. 2007. 7월

이치가와 곤의 영화 [악마의 공놀이 노래] 포스터


(생각난 김에, <비숍살인사건>(S.S.반다인/김성종 옮김(그 김성종!), 동서문화사, 2003. 1. 동서문화사판 추리문고의 초판은 1977년이다.)

구전되어오는 노래의 내용에 따라 연쇄살인이 벌어진다는 아이디어는 꽤나 흥미롭다. 그런만큼 수많은 미스터리에서 노래에 맞춰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이야기를 잘 활용해왔다. 이를테면 마더 구즈의 노래를 테마로 살인사건이 짜이고 풀려가는 걸작 미스터리들이 즐비하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잊을 수 없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국살인>이나, <주머니에 호밀을>같은 작품들이 있고, 엘러리 퀸 역시 이를 종종 활용했다(<일곱번째 살인사건>). 아마도 이 계열에 첫 손 꼽힐 작품은 반 다인의 <비숍살인사건>일 텐데, 동요살인의 모든 것을 집약적으로 대표하는 작품이다.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노래란 것은 사실, 정해진 해석이 있을 수가 없다. 게다가 삶이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것인만큼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이야기가 많다. 추리소설들이 애용해 마지않는 마더구즈의 노래만 하더라도 (18세기 이래로 영국에서 전해내려온 이 자장가들에는 지금의 감각에서는 애들에게 결코 들려주지 않았을 강도와 범죄, 폭력과 살해가 넘쳐난다. 그럴수밖에, 마더구즈는 지독히도 먹고 살기 힘들었던 민중들의 노래이니까) 악의없이 명랑하게 수많은 등장인물들을 죽여 버린다.

(로버트 단턴은 <고양이 대학살>에서 마더구즈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프랑스와 독일의 이야기보다 영국의 동요들은 쾌활하고 변덕적이며, 명백히 그것이 비유하는 사건이나 인물보다 어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단턴은 그 이유를 영국의 동요들이 비교적 사람들이 먹고 살만해졌던 17세기 이후에 쓰여진 것이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그럼에도 마더구즈에는 처참하고 고통스러운 폭력과 절망, 죽음의 세계가 깃들어 있다. 사람들의 오랜 노래라는 것은 결코 사람들의 삶에서 떠나지 않는 법이다. 또 하나 흥미있는 것은 프랑스에서 민담이 발전하고 동요가 발전하지 못한만큼, 영국에서는 동요가 발전하고 민담이 발전하지 못했다는 점, 영국의 그것이 프랑스의 것보다 항시 해학적이고 명랑하며 변덕적이라는 단턴의 언급.)

마더구즈가 미스터리에서 선호되는 이유는 아마도 그 형식과 내용의 불균형 때문일 것이다. 아무 생각없이 흥얼거리게 되는, 각운을 맞춰놓은 유쾌한 노래들이, 돌아서서 생각해보면 섬뜩하게도 줄창 누가 죽어나가는 얘기이다. 그런데 도대체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워낙이 노래란 것이 이야기하고 달라서 내용을 전하기 위한 게 아니라 부르기 좋아야 하는 법이다. 운율이 중요하지 정확성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러다보면 노래 내용은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찬 수수께끼가 되어 버린다.    

예를 들어

Who killed Cock Robin?
I, said the Sparrow,
With my bow and arrow,
I killed Cock Robin.

Who saw him die?
I, said the Fly,
With my little eye,
I saw him die.
(이하략)

누가 울새를 죽였나?
참새가
'내가 활과 화살로
울새를 죽였네'라고 말했네.

누가 그가 죽는 것을 보았지?
파리가
'내 작은 눈으로
그가 죽는 것을 보았네'라고 말했네.

<비숍살인사건>에 등장하는 마더구즈, 누가 울새를 죽였나 인데, 노래 전체가 수수께끼이다. (각운때문이 아니라면)대체 왜 참새가 활과 화살로 울새를 죽인단 말인가 (아, 이 노래를 그대로 가져온 델리 스파이스의 노래가 있는데, 아마 제목도 누가 울새를 죽였나 일거다. 그 노래를 듣고 델리 스파이스는 미스터리 팬일까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미스터리 팬이 아니고, 영어조기교육에  정신나간 학부모가 아니면 누가 마더구즈에 관심을 갖는단 말인가!) 

수수께끼로 가득찬 노래가 미스터리에서 서사 장치로 작동하게 되면, 일종의 극중극, 액자짜기가 가능해진다. 노래를 매개로 사건은 노래 안의 서사와 노래 밖의 서사로 나뉘어진다. 이야기는 그래서 원래 노래의 의미는 무엇이고, 노래는 어떻게 귀결되는지를 찾아가는 것과, 노래 밖에서 벌어지는 살인과, 이후의 살인이 어떻게 이어질지, 그리고 노래를 이용한 살인의 범인은 누구인지, 왜 노래를 이용하는지의 이야기가 겹치게 된다. 동요의 풍부한 상징이 안팎을 연결하면서 이야기의 짜임이 촘촘하게 엮이게 되는데, 이런 장치를 활용하는 미스터리는 살인사건에 극적인 서사성을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숨겨진 이야기, 누구도 몰랐던 범인의 과거가 노래와 엮이게 되는 식이다.
(<악마의 공놀이 노래>(1959)가 이런 식의 전형이다. 요코미조 세이시는 대체로 신파적이고 통속적인 스토리를 잘 엮는데-멜로 드라마의 전형!-이 역시, 범인과 희생자의 과거, 출생의 비밀이 노래에 담겨있다. 바람둥이 남자에게 버려진 여인의 비극이 수많은 연쇄살인의 시작점이 되었다는 지극히 신파적으로 짜여진 미스터리.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역시 과거의 범죄가 현재의 연쇄살인의 시작이다, 물론 둘을 엮는 것은 마더구즈의 노래, 열개의 인디언 인형.)  

또한 노래는 그 자체가 일종의 암호로 기능한다. 살인사건과 노래를 대응시켜가면서 노래 자체를 살인사건의 상징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노래와 살인사건이 얽힐 때, 일차적인 기대는 노래에 무언가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대로 실제로 노래와 관련해서 비밀을 짜고 이야기를 얽을 수도 있지만, 바로 그런 사람들의 기대를 전제하고 적극적으로 살인사건의 요소로 활용할 수도 있다. 범죄를 조작하고, 알리바이를 만들고, 범인을 다른 사람으로 지목하게 하는 등. 물론 이런 장치로 활용될 수 있는 것 역시 노래가 살인사건에 또 하나의 서사, 이야기를 주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노래는 일종의 맥거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스터리 내내 관심의 초점은 뭔가 의미심장한 노래에 가 있지만, 실제 살인사건은 그와 전혀 무관하게 벌어진다. <비숍살인사건>(1929)은 이런 미스터리의 고전이며 전범이라고 할 수 있다. 마더구즈와 함께 진행되는 연쇄살인에 모든 사람들이 공포에 질리지만, 사실  마더구즈는 범인에게 범죄를 은폐하고 다른 사람을 범인으로 만들기 위해 우연히 선택된 요소에 불과하다. 


아마도 이런 기법이 적극적으로 활용된 가장 유명한 사례는 <장미의 이름>일 것이다. 노래가 아니라 요한계시록의 예언이지만,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살인사건 속에서 허구의 또 다른 이야기를 삽입하는 것, 그래서 사람들이 쓸데없이 또 하나의 이야기의 진실은 무엇인지 궁금해하며, 그 다음은...을 초조해하게 만드는 것, 즉,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효과적인 장치가 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미스터리는 사실, 모든 것이 계획되고 통제되는 세계안에서 가능하다. 동요 혹은 잘 알려진 이야기에 따라서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진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범인이 창출한 세계가 인위적이며 처음과 끝이 존재하는 닫힌 공간임을 전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요 혹은 자장가는 사람들에게 그저 자장가이고 동요일 뿐이다. 그게 다른 의미를 가지는 세계는 고립된 특별한 공간, 일상적 삶과 분리된 살인사건만을 위한 공간이 된다.
이야말로 밀실살인과 더불어 퍼즐풀이 고전 미스터리의 한 전형이다. 그런만큼 최근의 미스터리(적어도 현대의 범죄와 살인을 의식하는)와는 꽤 거리가 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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